지난 주말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올해 23번째를 맞은 행사는 웃음과 환호와 박수로 넘쳐났다. 무엇보다 설렘이 극장 안팎에 넘실거렸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후 처음 경험하는 영화제다운 영화제였다.
영화제 열기를 몸으로 느끼며 극장이 빠르게 되살아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때마침 한국 영화 기대작 ‘외계+인’(감독 최동훈),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 등이 여름 공개를 발표했다. 한국인이 유독 좋아하는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닥터 스트레인지2)'도 개봉한다고 하니 극장 부활의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고 판단했다.
‘보복 관람’이라고 할까. ‘닥터 스트레인지2’는 개봉일인 4일에만 71만5,325명을 동원했고, 어린이날엔 106만1,677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올해 하루 최다 관객수가 43만7,712명(1월 1일)인 점을 감안하면 눈이 번쩍 뜨일 수치들이다. 지난 2년간 적자의 늪에 빠져있던 극장들로선 눈물이 나도록 기뻤으리라. 극장이 살아야 제작사들이 영화에 들인 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남겨 다시 영화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박수만 칠 일은 아니다. ‘닥터 스트레인지2’의 관객몰이에서 악성 징후가 엿보여서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닥터 스트레인지2’는 상영 첫날 전국 스크린 수 중 51.3%를 차지했다. 상영 점유율은 74.5%나 됐다. 하루 동안 영화를 10번 상영하면 7번 이상은 ‘닥터 스트레인지2’였다는 얘기다. 좌석 점유율은 79.9%였다. 전국 모든 극장 좌석 수의 8할을 가져갔다. 5일 수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스크린 독과점'이라며 십자포화를 맞았던 ‘군함도’와 비교해 보자. ‘군함도’의 스크린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날은 7월28일로 37.5%였다. 상영 점유율 55.8%, 좌석 점유율은 62.5%였다. 관객이 1,626만 명에 달했던 ‘극한직업’이 극장가를 휩쓸던 2019년 2월 4일 스크린 점유율은 35.8%, 상영 점유율은 52.4%, 좌석 점유율은 59.1%였다. ‘닥터 스트레인지2’와 비교하면 약과다. 그럼에도 ‘군함도’와 ‘극한직업’ 관계자들은 극장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러워했다. 코로나19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하나 ‘닥터 스트레인지2’의 극장 점령 양태는 지나치다.
코로나19로 극장산업이 붕괴 직전에까지 몰리자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극장 걱정을 할 때가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유통망을 앞세워 제작사들을 부당하게 대우했던 시절을 감안하면 극장을 좋아할 수 없으나 공생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복합적 심경이 담긴 말이었다.
지난달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국영화산업 위기상황 극복방안 토론회’에서도 발언 대부분이 극장 살리기에 집중됐다. 하지만 극장이 코로나19 이전처럼 다시 '스크린 독과점'을 묵과하고 '함께 살기'에 소홀해진다면, 결국 이런 의문이 쏟아질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하여 극장을 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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