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고등학생 때 논문 썼다던 그 많은 천재들은 어디로 갔나"
알림

"고등학생 때 논문 썼다던 그 많은 천재들은 어디로 갔나"

입력
2022.05.08 10:30
수정
2022.05.08 16:56
0 0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00년대 초 대학입시 제도 바뀌면서
'고교생이 논문' 황당무계한 일 벌어져
부모들 욕심이 억지로 만든 가짜 천재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홈페이지 캡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홈페이지 캡처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부모들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교 1학년 때 두 달간 단독 논문 5편을 작성했고 같은 기간 전자책 4권을 출판했다'는 허위 스펙 의혹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지난달에도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인사에 대해 "대부분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해 온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 많은 천재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2000년대 초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논문을 쓰는 천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그는 이런 천재들이 성장해 학계를 이끈다면 우리 학문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학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신이 서울대에서 가르쳐 온 학생들 중에서도 "이전 세대의 학생들과 비교해 천재스럽다고 느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로부터 고등학생인 자식이 '경제학원론'을 저술했으니 감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날고 긴다는 서울대 학생도 이해하기 힘들어 애를 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일개 고등학생이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저술했다니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제안은 단번에 거부했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11월 작성한 논문(‘국가 부채가 중요한가-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의 초록. 사회과학네트워크(SSRN) 홈페이지 캡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11월 작성한 논문(‘국가 부채가 중요한가-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의 초록. 사회과학네트워크(SSRN) 홈페이지 캡처


반면 자신과 이전 세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고교시절은커녕 대학생 때도 외국 저널에 논문 한 편 실어보지 못했다며, 논문이 스펙쌓기 수단으로 변질됐음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경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변변한 논문 하나 써 본 적이 없다"며 "대학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우리 세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전 세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 역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논문 한 편 써낸 적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일이 2000년대 초 수시전형이라는 새로운 대학입시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이 과거 새 입시제도 도입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강력히 지적했으나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고등학생들이 논문을 썼다고 나서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현재는 논문 집필을 스펙으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하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고등학교 때 논문을 쓰는 천재가 전혀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며 "어린 학생이 스펙 쌓기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에 시달려 건전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늘 말하지만 그런 쓸모없는 짓에 매달리게 하지 말고 아예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인 일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동훈 "장시간 집필한 고등학생 수준의 글... 의도적 왜곡·과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뉴스1

한편 '한겨레'는 4일 한 후보자의 딸이 고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하반기 6편의 논문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 후보자의 딸은 논문 중 3편을 11월, 2편은 2월에 작성했다. 그런데 11월엔 '기하학', '기초 미적분학', '세포 주기와 유사 분열' 등에 관한 4권의 전자책도 출판했다.

한 후보자는 이튿날 즉각 입장문을 내고 "장기간에 걸쳐 직접 작성한 고등학생 수준의 글을 마치 고등학생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의도적인 프레임 씌우기용 왜곡·과장이자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8일 한 후보자의 딸 논문 중 일부를 케냐 출신 대필 작가가 작성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서 한겨레는 대필 작가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윤주영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