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진심으로 고통스럽다. 잘못된 과거를 끊어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12일 성비위 혐의로 박완주 의원을 제명하면서 박지현(26)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불꽃'이라는 활동가명으로 성착취 범죄인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공론화를 주도한 인물.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자기 당 정치인들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를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는 의미로 영입한 그로서는 이번 사태가 누구보다도 곤혹스러울 터다.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 뒤 당 지도부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 편 감싸기에 급급하고 성범죄에 둔감했던 민주당이 그나마 이번에 당 중진인 박 의원에게 당내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비대위원장의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당내에서 박 비대위원장 홀로 쓴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영입했던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조차 박 의원의 제명 문제에 대해 “당이 먼저 조치를 했으니 지켜보겠다”며 발을 뺐다.
□ 뿐만 아니다. 그는 민심이 동요할 때마다 민주당 의원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고 있을 때 홀로 나섰다. 그는 지난달 민주당이 무리한 검수완박 입법 속도전으로 비판받을 때 “질서 있게 철수하고 민생 법안에 집중하는 길이 있다”며 신중론을 폈고, 윤석열 정부의 내각 인선을 비판하려면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는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욱 의원이 당내 화상회의 도중 성적 비속어를 말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최 의원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 민심과 당심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분투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욕설이다. 심지어 출신 대학을 거론하며 "무슨 능력으로 올라갔느냐"라는 조롱까지 서슴지 않는다. 박 위원장의 처지는 9회말 역전위기에 홀로 마운드로 올라가는 구원투수를 연상케 한다. 국민들의 분노지수를 끓어오르게 하는 민주당의 자기 편 감싸기 문화를 비판하고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하는 구원투수를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도록 방관하는 정당에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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