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드는 시간과 관계없이 요즘은 새벽에 깬다. 수면 시간이 좀 부족하다 싶어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화초에 물 주고, 쌈 채소를 뜯고, 풀을 뽑는다. 어느새 잠이 없어진 나이가 된 건가 싶지만, 사실은 머릿속에 동네책방잔치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북토크, 클래식 콘서트 등 일을 벌이며 놀다 지난해 봄부터 우리 동네 용담호수에서 수공예장터인 '뚝마켓'을 열었다. 우리 부부와 마을의 몇몇 예술가들이 모여 시작한 뚝마켓은 코로나 상황이라서 조심스럽게 시작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꽤 모여들었다. 호숫가를 배경으로 하니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워 책을 싸들고 나가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책방을 하는 나로서는 이곳에서 책잔치를 열고 싶었다. 같은 용인에 있는 책방들을 수소문해보니 10곳이 넘었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는 5월 28, 29일 양 일간 용인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서울, 대전 등 21곳의 동네책방들이 모여 책잔치를 연다.
개성 강한 동네책방들이 모여 책만 진열해놓아도 볼거리가 많을 터. 그래도 책잔치에 걸맞게 북토크, 동시 쓰기 교실, 그림책 놀이, 클래식 공연과 해설, 버스킹, 새 산책, 캘리교실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상을 차렸다. 시간대별로 아이와 어른이 각각, 혹은 함께 즐길 수 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을 내는 등 동네책방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사계절 대표 강맑실, 동시작가 박혜선, 그림책 작가 이루리 선생들은 고맙게도 문자 하나로 흔쾌히 오겠다 했다. 재주 많은 책방주인들은 이런저런 체험과 북토크를 진행한다. 여기에 그동안 뚝마켓에 참여했던 수공예공방 30여 곳도 함께한다. 잔칫상이 좀 걸게 됐다.
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일찍이 전우익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물론 책방 해서 돈을 벌어 잘 살지는 않지만, 나는 책방을 하면서 같이 놀고 함께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혼자서도 잘 놀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을 아는 나 같은 책방주인들이, 작가들이 이곳 시골까지 찾아와 큰 놀이판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아마 그들과 나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놀기에 정신 팔릴 것 같다. 무거운 책을 싸들고 나갈 테니 책 좀 팔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책은 놀기 위한 핑계일지 모른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해도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한 책방주인은 창밖의 인파를 보며 혹시 투명책방인가 생각했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책방잔치라고 사람들이 특별히 많이 몰려들 것 같지는 않다. 잔칫상 차려놓고 우리끼리만 놀면 참 민망할 텐데 말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입장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좀 많다. 그러나 설렘이 훨씬 크다. 출판단지가 있는 파주 같은 곳이 아닌 뜬금없는 농촌에서, 그것도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책잔치. 책에 관심 없는 이들이라도 슬슬 호숫가를 거닐며 책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쉼이 되리라 믿는다. 또 아는가. 책이 나의 인생을 이곳까지 끌고 온 것처럼 누군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도. 이러니 내가 잠을 설치고 자꾸 웃음이 나올 수밖에. 나는 요즘 이렇게 사람들을 꾄다. 우리 좀 같이 놀아요. 혼자 놀면 심심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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