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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지 못한다는 두려움

입력
2022.05.28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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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지난 2년간, 난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지냈다. 연희동은 조용하고, 기다란 하늘색 꽁지가 아름다운 물까치들이 많이 사는 데다가, 충격적으로 맛있는 중국집이 즐비한 살기 좋은 동네였다. 그러나 이곳에 정을 붙이고 좋아하는 식당을 몇 개 찾아냈을 즈음이 되었을 때 난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임대차 계약도 끝나가고 있었고, 업무상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러야 하는 곳이 연희동에서 접근성이 딱히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2022년에 걸맞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거야! 집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2년마다 떠나는 거지!" 같은 이상한 소리를 되뇌며 최대한 스스로를 위안해 보긴 했지만… 역시 살 집을 알아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부동산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주의 한 축이면서 다른 둘에 비해 훨씬 더 비싸니. 내가 모아둔 돈과 보증금을 맞춰 보고 월 수익을 고려하며 감당 가능한 월세를 계산하면, 그리고 그 계산에 맞는 집을 확인하다 보면 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가를 매우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부정적인 기운을 사방에 뿜어내는 내게 친구들이 여러 조언을 해 주었다.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아니, 왜 굳이 서울에 살려고 드는 거야?" 그야말로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내가 전혀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다. 외부 일정이 많아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 있을 뿐이다. 나는 집에서 시간을 아주 잘 보낸다. 한국의 집순이/집돌이 순위를 매긴다면 2만 등 안에는 들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좀 멀더라도 더 넓고 살기 좋은 곳에 사는 게 좋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서울 바깥에 살고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좋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여러 도시에는 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 정신의 가장 감정적인 부분이 비명을 질렀다.

난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10년 전에 서울에 처음 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좀 했는데, 그때 내 인생에서 서울은 궁극적 목표였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했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고, 서울에는 '올라가고' 지방에는 '내려간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살지 못하면 낙오자 딱지가 붙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흉터는 지금까지 내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 나는 표준어와 사투리가 기묘하게 뒤섞인 억양으로 말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수도권에 젊은이들이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에 기회가 더 많은 것도, 삶의 질과 관련된 지표들이 이곳에서 더 높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획기적인 방법으로 지방의 지표를 올리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이렇게 고정된 사회문화를 바꾸기는 정말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시 중구에서 나는 내 조건하에서 최대한 괜찮아 보이는 집을 찾아냈다. 공인중개사와 함께 계약서를 번개같이 끝마치고 동네를 둘러보았다. 내가 생전 처음 와 보는 이 동네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지 않았다. 문득 나는 내가 꺾꽂이된 나무 줄기 같다고 생각했다. 뿌리 없이, 불안정하게 흙에 세워진.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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