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전사통보를 받았을 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평온하던 가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50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이슬이 맺힌다. '호국보훈의 달'은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아주 특별하다. 6월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달이고, 현충일에 어머님은 6남매를 데리고 현충원에 갈 준비로 새벽부터 분주하시곤 했다.
아버지가 전사하셨기에 우리 가족은 국가유공자 가족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많았다. 어릴 때 '원호대상자'로서 받은 느낌을 돌이켜 생각하면, '아비 없는 자식', 뭔가 부끄러운 느낌,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국가의 명령으로 전장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으면 국가가 미안해할 일인데, 왜 내가 부끄러운 걸까?', '나라를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친 사람들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는 나의 오랜 물음이었고, 풀어야 할 숙제였으며, 역할을 해서 바꾸고 싶은 소명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는 국가보훈처장의 중책을 맡게 됐다. 의정 생활을 통해 국가유공자가 자긍심을 가지려면 '보훈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왔기에,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그동안 보훈(報勳)은 돕고 보살피는 '원호(援護)'의 개념에서 합당한 '보상'과 '예우'의 개념으로 변화하는 등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제 예우와 지원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애국의 역사를 국민과 미래 세대에 알려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근본적인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의 보훈 분야 국정과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이다. 국가보훈처장으로서 내 역할은 대통령의 보훈철학을 구현하고, 국정과제를 정책화하여 국민과 보훈가족이 체감토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할 일이 태산이다. 국가유공자 등록·심사제도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바꾸어 억울한 분이 없도록 하고, 위탁병원 확대, 연천현충원 조성 등 고령의 보훈가족께 가장 필요한 의료·안장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것이다. 국가안보에 헌신한 제대군인 지원을 강화하고, 의무복무자에 대한 군 복무 기간 호봉 반영 등 사회적 우대 실현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실현할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이 자긍심을 갖게 하자는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해 성심을 다해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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