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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의 테러 '예행연습'

입력
2022.06.2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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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마쓰모토 사린 테러

1994년 6월 마쓰모토시 사린가스 테러 피해자의 집에 모여든 보도진. AFP 게티이미지

1994년 6월 마쓰모토시 사린가스 테러 피해자의 집에 모여든 보도진. AFP 게티이미지


일본 옴진리교의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은 반사회적 종교의 해악을 극명하게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지만,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테러에 앞서 한 해 전 예행연습 삼아 감행한 ‘마쓰모토 테러’는, 시민 안전을 위한 공권력의 책임과 언론의 윤리 문제를 부각한 사건이었다.

여러 범죄 연루 의혹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던 옴진리교단은 그 보복으로 독가스 테러를 기획, 교단 내 바이러스학 전문가들을 동원해 사린가스와 탄저균을 제조 배양했다. 사후 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테러 당시 교단이 보유한 생화학무기는 단숨에 42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양이었다.

교단은 1994년 6월 27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고급 주택가에 개조 차량으로 사린가스를 살포했다. 옴진리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대표자와 사건 주심판사 등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그 사건으로 8명이 숨졌고 2,000여 명이 치료를 받았고, 200여 명이 후유증을 겪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옴진리교 소행이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도 묵살했다. 가스에 중독돼 혼수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집에서 다량의 농약을 발견, 회사원이던 피해자 남편인 요시유키 고노를 핵심 용의자로 주목한 탓이었다.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자 언론도 광분했다. 일부 언론은 고노 일가에 ‘독가스 맨’ ‘살인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광란의 마녀사냥은 그의 집에 있던 농약으로 사린가스를 추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혐의를 완전히 벗은 건 이듬해 도쿄 지하철 테러 이후였다. 언론은 고노와 그의 가족에게 공식 사죄하는 기사를 실어야 했다. 고노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와 여론재판의 해악에 대해 기자회견과 강연 등을 통해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전자오르간 교사였던 그의 아내는 의식 없이 지내다 2008년 별세했다.

어쨌건, 경찰의 헛발질과 언론·군중의 마녀사냥이 이어지던 사이, 성능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교단은 이듬해의 참극을 기획하고 있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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