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 처음으로 좌파정권이 출범한다. 지난 19일 대선에서 좌파연합 ‘역사적 조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백만장자 기업가 출신을 제치고 당선되면서다. 페트로 당선인은 좌파 게릴라단체 ‘M-19’ 출신의 경제학자다. 이로 인해 중남미 주요국에서 이른바 분홍 물결, ‘핑크타이드’(좌파 득세)가 두드러지게 됐다.
□ 상대 후보는 부패혐의 전력의 우파 포퓰리스트였다. 반면 페트로는 ‘반군 게릴라’ 경력에 급진적 이미지가 강했던 대권 삼수생. 그런데 민심은 높은 실업률과 부패, 나아지지 않는 빈곤에 염증을 내던 상황이었다. 페트로는 여성, 광부, 어부, 커피재배 농민 등 소외받는 계층과 지역을 타깃으로, 이념공세 대신 다양성, 포용, 평등 같은 좀 더 확대된 사회의제와 실용정책을 내세웠다. 에너지 전환이나 친서민 복지 확대, 기후변화 대응 같은 어젠다들이다.
□ 친미국가의 대명사인 콜롬비아는 한반도의 5배에 달하는 면적에 석탄, 석유, 니켈, 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대국이다. 마약 관련 마피아나 좌익게릴라를 상대로 힘겹게 벌이는 전쟁에 미국은 군사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콜롬비아가 자국의 에너지 보호를 기반으로 대미관계 변화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페트로는 미국과의 FTA 재협상, ‘반미국' 베네수엘라와 관계 회복, 중국과 실용관계를 예고했다. 중남미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에서 좌파가 집권한 데다 10월 브라질 대선에선 ‘좌파의 대부’ 룰라 전 대통령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 이런 흐름은 중국의 발 빠른 중남미시장 공략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2015~2021년 유엔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를 제외하면 무역면에서 중국은 미국을 앞질렀다. 달라진 미국의 입지를 두고 혹자는 1992년 일본계 미국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이 틀렸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단언했지만 낙관적 예언이 실패했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신자유주의 진영의 도덕적 타락이 결정적이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앞마당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설자리를 잃는 풍경을 세계가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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