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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임신중지권을 부정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후 대법관들의 인사청문회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임명한 첫 대법관 닐 고서치는 “좋은 판사라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다른 판례들과 똑같이 대우할 대법원 판례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2018년 청문회에서 “대법원 판례로 확정되었고 선례구속의 원칙에 따라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명백한 거짓말로 상원 인준을 받은 셈이다. 캐버노 인준의 결정적 캐스팅 보트였던 수전 콜린스·조 맨친 상원의원은 "속았다"며 배신감을 표출했다.
□ 중대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법 논리에 따른 판례 번복이라면 토론의 여지가 있겠다. 달라진 것은 헌법이 낙태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대법관이 다수가 됐다는 사실뿐이다. 헌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는 결국 선택적 정의로 이어진다. 판결문은 “역사와 전통에 깊이 자리 잡은” 권리만이 '암묵적으로나마' 보호할 권리라 했고, 피임, 동성애, 동성혼을 인정한 판례들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런 식이면 인종 간 결혼금지를 위헌으로 본 판례는 왜 안 뒤집냐는 반론이 나온다.
□ 우리나라 대법원도 임명권을 쥔 대통령에 따라 대법관 구성이 바뀌고 판결 성향이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문제적인 게 과거사 배상 판결일 것이다. 인혁당 등 과거사 피해자들이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 배상금을 청구했는데, 2011년 대법원은 이자 발생 시점을 늦춰 하급심 배상액이 과다하다고 판결했다. 이미 배상금을 받아 쓴 피해자들은 반환금에 지연이자가 붙으며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박근혜 정부는 반환소송을 내 빚독촉을 했고 문재인 정부는 방치했다. 최근에야 법무부가 법원 화해권고를 받아들여 지연이자를 면제키로 했다.
□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양심이 뜻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따르는 직업적 양심이다. 간혹 법관들이 개인의 가치관을 양심으로 여기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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