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북한 외무성이 5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근 미국이 에게해 수역에 저들 군사기지들을 설치하려 하면서 튀르키예(터키)와 그리스 관계가 또다시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속셈은 튀르키예 견제와 발칸반도 지배권 강화라며 "가는 곳마다 분쟁의 불씨를 뿌린다" "미국이야말로 평화의 파괴자"라고 맹비난도 했다.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전후로 북한이 쏟아낸 반미 성토문 중 하나인데, 먼 나라 영유권 분쟁을 시빗거리 삼은 점이 특이하다.
□ 미국이 그리스에 군사 거점을 늘리려 하는 건 맞다. 지난해 10월 그리스 중부·북부 내륙, 크레타섬 등에 미군기지 4곳을 짓기로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최근 그리스 의회 비준도 받았다. 1980년대 반미 성향 사회당 집권으로 2곳만 남았던 그리스 주둔 미군기지가 도로 늘어나면서, 나토 동부 방어의 기존 거점인 튀르키예 미군기지 역할은 축소될 참이다. 이웃나라 군비 강화에 심기가 불편해진 튀르키예는, 그리스 총리가 지난 5월 미국을 찾아 "터키에 무기를 팔지 말라"고 종용한 데 격분해 정상 간 소통을 차단한 상태다.
□ 미국은 정말 양국 갈등을 조장한 걸까. 나토 회원국이지만 튀르키예 권위주의 정부는 '나토 주적' 러시아와 밀착해 서방과 마찰을 빚어온 터라, 미국이 이를 견제하려 그리스와의 군사 협력 강화 카드를 꺼냈다고 볼 여지는 있다. 다만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2년 전에도 동지중해 영유권 문제로 무력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고, 에게해에서 무시로 도그파이트(전투기 근접 추격)를 벌이고 있다. 원래도 극한 대립 중인데 미국의 조치가 대단한 '이간책'이 됐을지 의문이다. 1,000년 전 셀주크튀르크와 비잔틴제국의 전투로 거슬러 오르는 두 앙숙은 선린보다 대립이 익숙한 사이다.
□ 딱한 건 다른 나라도 아닌 북한이 '분쟁의 불씨' '평화의 파괴'를 운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미사일 실험에 골몰하며 동북아를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분열시키고, 지구촌엔 신냉전 공포를 드리우고 있는 당사자가 바로 북한 아닌가. 요즘은 누리호도 군사용으로 개발한 건데 왜 문제 삼지 않느냐며 '내로남불'이라고 강변하던데, 새로 익힌 신조어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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