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증세는 정권을 잃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워 그 함정을 피하려 했지만 ‘연말정산 폭탄’ 위기를 자초했다. ‘적게 떼고 적게 돌려주는’ 연말정산 조정의 결과 2014년 초 월급쟁이들이 ‘13월의 월급’은커녕 세금을 토해내 불만이 쏟아졌다. 이듬해에는 공제 항목 조정으로 세부담이 커진 고소득자들이 분노했다. 정직하게 복지를 넓히려 증세한다고 국민을 설득했으면 나았으련만 눈가림으로 세수를 늘리려다 민심이 악화했다.
□ 감세도 위험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초과 세수가 53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역대 최대 추경을 집행했는데, 법인세·종부세·재산세를 줄줄이 감세한다니 재정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소득세 감세까지 거론된다.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실질 임금이 제자리걸음이라 근로소득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일단 “소득세제 전반 개편은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경제 위기에 부자감세만 하고 유리지갑은 털어간다는 불만이 터질 수 있다. 결국 중·저소득층 세부담을 경감하는 일부 개편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 소득세는 이해당사자가 워낙 많은 터라 개편안마다 딜레마다. 우선 일괄 감세는 재정 부담이 커 어려울 것이다. 근로자 10명 중 4명이나 되는 면세자를 줄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재정에 도움이 되지만, 어려운 이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지금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 8단계 과표구간 중 중·저소득 구간은 감세하고 고소득 구간은 유지 또는 증세하는 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고소득자들이, 감세 혜택을 누리는 고액자산가들과 비교하며 불평을 토로할 가능성이 있다.
□ 경기가 좋을 때는 차라리 감세가 쉽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깊어지는 때에는 정부가 세부담을 줄여줘야 할 필요성, 취약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더욱 긴요함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모든 감세가 선이 아니며, 전 정부의 정책이라고 해서 다 되돌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부자들의 세부담이 공동체를 위해 마땅히 져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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