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단체 키오스크 설치 매장에서 주문 시도
음성 지원 안 되는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
"메뉴를 선택하라면서 뭐가 있는지도 안 알려주네."
서울 마포구 한 패스트푸드점의 무인 주문기(키오스크) 앞, 화면 이곳저곳을 눌러보던 시각장애인 이창현(31)씨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키오스크에서는 '제품 선택 후 선택 완료 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 뒤로 아무 말이 없다. 키오스크 가까이 귀를 대 보아도 경고음만 들릴 뿐 음성 안내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12일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시각장애인연대) 소속 시각장애인 10여 명이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무인 키오스크 매장을 방문했다.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로 주문하고 픽업존에서 수령하는 이른바 '스마트 매장'이다. 키오스크로 주문한 뒤 음식은 점원으로부터 받던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령까지도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키오스크 앞에 선 시각장애인들은 하나같이 기계에 귀를 가까이 댔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음성 안내를 받아 주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널찍한 화면에 문자와 숫자, 상품 이미지를 상세히 띄워 보여주면서도 청각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키오스크뿐 아니라 전광판 등 매장 내 모든 안내 시스템에서 음성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메뉴를 읽어주지 않는 키오스크 앞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주문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혹시나 음성 안내가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화면 여기저기를 눌러봐도 익숙한 오류음만 들렸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메뉴가 선택돼 계획보다 훨씬 비싼 금액이 나오기도 했다. 이씨는 "비장애인에게 시각 정보가 가장 편한 소통 방식이라면 시각장애인들에겐 청각 정보가 가장 편한 소통 방식"이라면서 "메뉴만 읽어줘도 이용하기에 훨씬 편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음식을 수령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고객 편의를 위해 설치된 픽업박스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장애물이었다. 전광판에 게시된 숫자를 봐야만 픽업박스를 확인할 수 있고, 영수증 바코드를 찍어 전광판에 나온 글씨를 읽을 수 있어야만 어느 픽업박스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안내견과 동행한 원희승(28)씨와 황인상(27)씨는 주방 직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주문과 수령을 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연대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6월 공개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강윤택 시각장애인연대 대표는 "현행 규정에 따르면 점자 패드 설치 등 기업들이 천만 원씩을 들여가며 기기를 교체해야 해서 유예 기간을 준다는 것"이라며 "음성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연동이나 이어폰 꽂는 구멍을 만드는 등 시각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청각 정보를 보충하는 방식 안에서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대책 위주로 요구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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