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환율전쟁’은 통상 각국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자국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낮추는 상황을 말한다. 대개 경쟁국 통화와의 교환비(환율)를 높이는 쪽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단순 계산으로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일 때 미국에서 3만 달러에 판매되던 현대차 수출시장 가격은 원화가치를 낮춰 환율이 1,300원으로 오르면 현지 시판가격이 2만5,384달러로 하락한다. 그만큼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환율전쟁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상황은 1995년 중반 미ㆍ일 자동차협상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미 80년대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94년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600억 달러의 3분의 2를 자동차 부문에서 기록할 정도로 미국 시장을 휩쓸며 미국 자동차산업을 고사 위기로 몰아갔다. 그러자 96년 대선을 앞둔 클린턴 행정부는 새삼 ‘자동차전쟁’을 선언하고 상무부를 앞세워 엔화가치를 극단적으로 밀어올리는 환율전쟁을 감행했다.
▦ 미국은 걸핏하면 특정국을 ‘환율조작국’이라며 제재를 가하지만, 당시 미국의 시장개입은 공공연했다. 내심 달러정책이 통상문제에 종속되는 걸 꺼렸던 재무부는 미지근했으나, 미키 캔터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공공연히 극단적 엔고를 언급했다. 연일 엔ㆍ달러 환율이 수직강하(엔고)하면서 급기야 그해 4월 19일엔 전후 최저치인 79.75엔까지 떨어졌다. 결사항전을 선언했던 일본은 결국 미국차 및 부품 수입 쿼터를 수치로 정하는 굴욕적 방식으로 협상에서 사실상 항복해야 했다.
▦ 요즘엔 반대로 달러 대비 자국 통화가치 폭락을 막으려는 방어조치가 치열해지면서 ‘역(逆)환율전쟁’이란 말까지 나왔다. 미국이 가파른 금리인상에 나서 달러가치가 치솟자 각국이 통화가치 유지를 위해 쫓기듯 동반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 주요 55개국 중앙은행이 2분기(4∼6월)에만 최소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횟수가 62차례에 달한다. 각국이 수출경쟁력보다 당장 인플레이션과 금융시장 안정에 급급한 심각한 상황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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