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여섯 살 무렵 개에게 종아리를 물렸다. 자그마한 개였지만 갓 새끼를 낳은 상태였고 보호자와 떨어져 있는 어린이를 만났으니 공격성이 높았을 것이다. 수십 년 전 기억이라 과장됐을 수도 있지만 공포감이 생생하다. 지금도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개를 만나면 웬만하면 길을 피해갈 정도로 트라우마가 깊다. 2주 전 울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8세 초등학생이 개에게 물린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 몸무게 13㎏ 넘는 중형견이 쓰러진 아동의 목을 공격하는 적나라한 영상이 공개됐기 때문인지 여론은 험악하다. 지난 20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국민제안 톱10에 ‘반려동물 물림사고 시 안락사 조치’가 포함되기도 했다. 울산 개물림 사고 견주는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됐지만 검찰은 사고견이 또 다른 사람을 공격할지는 알 수 없다며 안락사를 보류했다. 임시보호소에 있는 사고견은 놀랍게도 매우 온순한 모습이라고 한다.
□ 한 동물구호단체가 사고견을 인수해 보호하겠다고 나서면서 안락사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단체는 개는 사회적 동물이 아니고 도덕적 인식을 할 수 있는 지성적 주체가 아니므로 안락사라는 사회적 처벌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개물림 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개의 탓이라는 응답자는 12.7%, 사람 탓이라는 응답은 84.5%였다.
□ 개의 공격성은 인류와의 공진화 과정에서 집을 지키고 사냥을 돕는 등 긍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사는 현대적 주거문화 속에서는 문제행동의 요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개물림 사고는 한 해 2,000건이 넘는다. 반면 국내 반려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하고 선거에서도 반려동물 공약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반려동물 보호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5종의 맹견에 입마개를 의무화하고 목줄을 채우도록 하는 등 규제도 강화되고 있지만 개물림 사고를 줄이기 위한 섬세한 대책은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견종이나 무게가 아닌 개의 기질과 공격성을 평가해 보호장구를 채우고 필요하면 약물처방을 하는 등 맞춤형 관리대책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모든 개는 사람을 물 수 있다’는 견주들의 인식 제고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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