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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문재인 그늘’

입력
2022.07.2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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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 혁신 등을 언급하고 있다. 뉴시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 혁신 등을 언급하고 있다. 뉴시스

소크라테스는 ‘모든 악(惡)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사실 무지는 악보다도 더 나쁠 수 있다. 어렴풋이나마 인식된 악은 양심의 가책이라도 생긴다. 반면 무지는 악을 의도하지도, 무엇이 악인지조차도 모르고 일을 저지르지만 결과는 악보다 더 치명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악보다 더 나쁜 무지의 대표적 사례로 페스트 대유행기에 서로 접촉을 피하도록 했어야 할 사람들을 되레 교회로 불러모았던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이 꼽히곤 한다.

□ 문재인 정권의 공공기관 정책에도 비슷한 무지가 작동했다. 문 정권은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여겼다. 문 전 대통령 자신이 2014년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공공기관은 어차피 공익을 위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 추구는 애써 떠들지 않아도 공공기관의 본래 목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새삼 사회적 가치를 내세운 배경은 뭘까.

□ 공공기관은 설립 목적에 맞는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LH라면 국민의 주거복지를 위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게 사회적 가치를 잘 실현하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문 정권은 공공기관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았다. 정부 시책을 뒷받침하거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책무까지 부여했다. 급기야 제도적으로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유도하기 위해 2019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항목의 점수를 과거에 비해 크게 높였다.

□ 그런 식으로 공공기관에 새로 넘겨진 사회적 가치 부담은 경영에 딜레마를 던졌다. 효율과 경제성이냐,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냐는 혼란이 상시화하면서 결국 공공기관 경영의 ‘도덕적 해이’가 초래됐고, 그게 전반적 기강해이의 원인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LH 직원 투기와 골프 파문이 또 불거졌다. 하지만 그건 무리한 정원 확대나 에너지 전환비용 독박에 따른 부실누적 등 공공기관에 쌓인 구조적 문제에 비하면 티눈에 불과할 정도다. 금명 간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이 나온다고 한다. ‘문재인 그늘’을 일소할 방안이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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