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에 따르면 기록된 홍수로 서울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홍수는 1925년 7월 을축대홍수다. 이 홍수로 하중도였던 잠실의 지형이 변하고 북한산성 안의 물길이 바뀌었다. 당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홍수’라는 책을 제작해 판매했을 정도다. 이 책에는 ‘한강하류부 범람도’라는 지도가 실렸는데, 한강 주변의 어떤 땅이 물에 덮였는지를 보여준다. 지금의 강남 반포ㆍ서초ㆍ양재, 중랑천ㆍ안양천변 등은 100년 전에도 물에 잠겼다. 이번 집중호우 피해도 이곳을 비켜가지 않았다.
□ 재해이력을 분석해 위험정도와 대피경로 등 방재정보를 표시하는 지도가 재해지도다. 재해가 많은 일본이 이 분야의 선진국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역별로 홍수ㆍ붕괴 등의 위험정도를 표시한 ‘해저드맵 포털’을 통해 재난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해저드맵 활용 기초지식' ‘후지산 분화와 해저드맵 풀이’ 같은 관련도서도 일본에선 베스트셀러다. 해저드맵 포털에 있는 홍수위험지도는 일본 전 국토97.3%의 침수위험도를 세세하게 구분한다.
□ 우리나라의 재해지도도 발전 중이다. 홍수범람위험도, 침수흔적도, 해안침수예상도, 지진발생이력도 등의 재해지도가 정부포털 ‘생활안전지도’를 통해 공개 중이다. 다만 공개된 12개 지도 중 위험도를 예측한 지도는 3개밖에 안 된다. 활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개도 늦었다. 침수흔적도(행정안전부)는 2006년부터 제작했는데 2018년부터 공개됐고, 2016년부터 제작된 도시침수이력도(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공개됐다. 공개 시 주택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민원이 많아 공개가 늦었다고 한다.
□ 지난 8일 밤 반지하주택에 사는 50대 여성이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서울 상도동은 '하천홍수위험지도'상 침수위험지역이었다. 평소 재해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다면 아까운 희생을 막을 수도 있었다. 재해복구와 구호에 치중하는 게 개발도상국형 재해대책이라면 예ㆍ경보시스템을 강화하고 재해지도를 활성화하는 작업은 선진국형 재해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181개 읍면동을 분석한 도시침수위험지도를 1,620개 읍면동(2025년)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부 대책은 뒤늦었지만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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