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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디즈니의 PC함이 반갑다

입력
2022.08.1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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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좀 다른 드라마라고 생각한 건 2회에 나오는 회식 장면에서였다. '한바다' 로펌 대표는 신입 변호사들을 격려하는 술자리에서 건배를 하며 말한다. "못 마시는 사람은 안 마셔도 돼." 아니, 대표가 이런 말을 하는 회사라니. 다년간의 회식 및 드라마 시청자로서의 경험상, 그 장면에서는 "꺾어 마시지 말고"가 더 자연스러웠다. 7일간의 코로나 격리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주저하며 회식 자리에 나가던 지인은 토로했다. "한 번 걸렸으니, 이제 안 걸리겠다고 빠지지 말라는데?"

그래서 '우영우'는 판타지다. 사수인 정명석은 자폐가 있는 우영우에게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무심코 말했다가 "미안해요.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것 같다"고 사과한다. 국내 굴지의 양대 로펌인 '태산'과 '한바다'의 대표는 모두 여성이다. 몇 장면만 봐도, 작가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대사와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을 굳이 넣어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함을 의도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일부 커뮤니티는 드라마 초반부터 이를 두고 '작가가 페미다', 'PC 묻었다'며 PC한 콘텐츠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끝내는 '우영우'가 '박원순 헌정 드라마'라는 억지 논란까지 불거졌다.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 이야기만 나오면 일단 반감부터 보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PC함은 죄가 없다. 리모컨을 돌릴 때마다 남성 간의 권력 다툼, 고부 갈등, 재벌 이야기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최소한의 PC함을 지키려는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건 누구인가.

문화 콘텐츠의 PC함이 자칫하면 교조적이고, 교훈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데는 동의한다. 주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한결같게, 평면적으로 그릴 때다. 반면 '우영우' 속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PC함에도 재미있고,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이유다. 최수연은 영우를 도와주면서도 영우가 로스쿨에서 늘 1등이었던 현실을 상기하며 갈등한다. 권민우도 그저 권력에 민감할 뿐, 마냥 나쁜 놈은 아니다. 우영우를 채용한 한바다 대표의 속내도 순수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드라마는 대신 질문하기를 택한다. 당신은 최수연인가, 권민우인가. 당신이 우영우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디즈니 실사 영화에서 인어공주 역할을 따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 디즈니·할리 베일리 SNS 캡처

디즈니 실사 영화에서 인어공주 역할을 따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 디즈니·할리 베일리 SNS 캡처

디즈니는 실사 영화를 만들며 인어공주 역에 흑인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했다. 그러자 일부 디즈니 팬들은 인어공주가 백인이 아니라는 점에 충격을 받고 반대했다. 인어공주는 상상 속 인물이라, 어떤 인종이냐가 이야기의 정체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데도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다. 서구 사회의 백인 중심 질서가 그만큼 공고하다는 방증일 테다.

한 평론가는 "'우영우'는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 이랬으면 하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우영우'와 디즈니의 PC함이 반가운 것도 변화를 상상하게 만들어서다. 누구나 상대를 배려하고 때론 잘못을 인정하는 상사와 일하고 싶다. 장애, 성별, 인종과 관계없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 속 세상은 그리해도 별탈 없이 잘 굴러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현실도 분명 그럴 것이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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