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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7주년에도 해방되지 못한 이들

입력
2022.08.1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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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15일 시립극단의 축하공연 ‘태극단’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대구 달서구 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15일 시립극단의 축하공연 ‘태극단’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5일은 77번째 광복절이었다. 연령에 따라 광복절이 처음인 갓난아이도 있을 것이고 77번째인 분도 있을 것이다. 77번째 광복절을 맞는 사람은 이제 우리 국민 가운데 약 6%에 불과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는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상처를 덮고도 남는다. 어느덧 나라를 빼앗겼던 슬픔도 가슴이 미어지는 광복의 기쁨도 책으로 배우는 역사가 됐다.

나라를 빼앗겨서 당했던 고통 가운데 하나가 일제가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강요했던 창씨개명이다. 그런데 아직도 성과 이름을 온전히 못 찾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무원으로 동원되었다가 사망한 약 2만1,000명의 한국인이다. 이들은 본인과 가족의 뜻과는 반대로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에 신으로 모셔져 있다.

1993년 11월 6일 호소가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당시 일본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인들이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한 것을 사죄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로 창씨개명을 언급했다. 1995년 8월 15일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포함한 모든 일본 총리가 이 담화를 계승해 왔다.

일본 총리들도 인정하는 식민지 지배로 인한 고통과 그에 대한 사죄에는 위에서 말한 2만1,000여 명의 한국인 죽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인이 당시엔 일본인이었고 일본을 위해 싸우다 사망했으니, 신사에 신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더 이상 내 아버지를 야스쿠니신사의 신으로 모시지 말라는 유족의 애절한 호소는 거부한다.

이런 신사에 지난 15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또 공물료를 보냈고 장관 3명이 참배했다. 물론 이 신사에 신으로 모셔진 한국인의 존재나 A급 전범을 염두에 두고 공물을 보내거나 참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 정부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행동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일제 침략전쟁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앗겼던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명목으로 A급 전범과 함께 신사에 모셔져 있는 것 자체가 굴욕이다. 일본 총리가 공물을 보내는 것을 보면 아직도 아버지의 성과 이름을 온전히 되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나라를 찾은 날이라고 모두가 기뻐하는 광복절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광복절이 77번이나 돌아와도 나라를 빼앗겼던 아픔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의 그런 기억이 유족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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