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개막 경기 시간에 맞춰 무심결에 TV 리모컨을 집어들었다가 허탈하게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은 낯선 ‘유료 중계’ 장벽에 부딪힌 시청자는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국내 독점 중계권을 가진 스포티비(SPOTV)의 새 시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료화 정책은 많은 축구팬을 당황케 한다. 월 1만 원대의 이용권을 구매하지 않으면 손흥민을 더는 안방에서 볼 수 없다니, ‘한국 선수 경기까지 돈 내고 봐야 하나’ 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중계권료 탓이다. 이번 시즌에 앞서 스포티비 운영사인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가 쿠팡플레이와 CJ ENMㆍ티빙, 통신3사ㆍSBS 등 다수의 OTT 경쟁자들과 중계권 입찰 끝에 따낸 중계권료는 3년간 9,000만 달러(약 1,17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3, 4년 전 연간 약 150억 원에 비해 2.5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고정팬이 탄탄한 스포츠는 OTT 업계에서 매력적인 콘텐츠다. 슈퍼스타 손흥민을 보유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쿠팡은 지난달 2차례 토트넘 방한 경기를 주최한 결과 300만 명의 시청자를 유입하는 특수를 누렸다. 글로벌 업계 1위 넷플릭스가 눈을 두지 않는 스포츠 분야는 후발주자들에겐 거대한 틈새 시장이다. 2위인 아마존이 US오픈과 프리미어리그, 미식축구 등을 중계해 유료회원제를 안착시키는 효과를 봤다. 애플도 최근 자사 OTT 애플TV를 통해 미국프로축구(MSL) 중계권을 10년간 25억 달러(약 3조2,375억 원)의 천문학적 규모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그래서 OTT 업계의 공습은 자본의 논리이거니, 또 한편 시대의 흐름이거니 이해할 수는 있다. 지난해 유럽축구연맹 주관의 유로2020(쿠팡플레이), 남미축구연맹 주관의 2021 코파 아메리카(쿠팡플레이), 2020 도쿄올림픽(웨이브) 등 국제대회 중계도 OTT 시장이 휩쓸었다. 티빙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카타르 월드컵 예선 등 주요 축구 콘텐츠를 점령했다.
다만 소비자에게 지워진 부담은 다른 문제다. 시청자 반발이 커지면서 지난 2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2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는 최근 OTT 등의 '독점' 스포츠 중계와 보편적 시청권 개념을 키워드로 꼽았다. 입법조사처는 "OTT는 부가통신사업자로서 '방송법'에서 규정하는 보편적 시청권의 적용 대상이 아닌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관련 법과 시행령 개정 등을 거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미디어 산업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논쟁을 예고했다.
박찬호ㆍ박지성의 경기에 밤잠을 설쳐가며 열광하고 다음날 학교, 직장에서 화제 삼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세상엔 할 게 너무 많아졌다. SNS, 유튜브, 게임 등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로 바뀌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그나마 ‘킬러 콘텐츠’로 여겨졌던 손흥민ㆍ류현진 경기조차 볼 수 없다면 팬들과 접점이 줄어들고 가뜩이나 파이가 작은 국내 스포츠 산업이 위축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올림픽, 월드컵도 돈 내고 봐야 하는 날이 온다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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