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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유럽의 목마른 여름이 역사까지 소환하고 있다.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스페인 저수지에선 7,000년 전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탈리아 로마 테베레강에선 네로 황제가 지었다는 다리 유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럽인에게 가뭄은 그나마 짜증과 호기심 수준이지만 다가올 겨울은 생존의 시험대다.
□ 러시아산 수입이 전쟁 여파로 막히면서 최근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보다 7배나 높아졌다. 겨울연료 비축을 위해 전방위 절약 캠페인이 진작부터 시작됐다. 독일 베를린은 관광명소 야외조명 1,400개를 껐다. 뮌헨은 시청 온수를 끊었고, 야간 분수도 가동하지 않는다.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 기간 난방도 중단한다. 비교적 온화한 스페인조차 2023년까지 난방온도는 최고 19도, 냉방은 최저 27도로 제한했다.
□ 공공의 절약은 약과다. 에너지난은 서민 생계를 위협한다. 지난주 1,971파운드(약 312만 원)였던 영국의 가구당 에너지요금 상한액은 내년 1월 4,266파운드(676만 원)로 뛸 전망이다. 내년 1~3월 난방비 등을 내고 나면, 영국의 3분의 1(1,050만) 가구가 빈곤선(중위소득의 60% 이하) 아래 놓일 거란 전망도 나온다. 독일에선 10월부터 가스 사용 기업과 가정에 ㎾h(킬로와트시)당 2.4유로센트(32원) 부담금이 추가된다. 지난해 가스요금으로 1,301유로(175만 원)를 냈던 4인 가구가 올해는 3,991유로(536만 원)를 낼 전망이다. 에너지요금이 가계지출을 늘리는 정도도 유럽 내 부국(핀란드 4%)과 빈국(에스토니아 15~25%) 차이가 크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 세계 탈원전의 기수였던 독일에선 요즘 올해 말 종료 예정이던 원전 3기 운전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화급한 석탄 발전을 위해 철도에서 승객보다 석탄 운송에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는 현지 보도까지 나왔다. 모두 글로벌 친환경의 축이 흔들릴 사건이다. 내년 봄까지 가스 사용을 15% 줄이는 유럽연합(EU)의 비상조치로 제조업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독일 자동차부품 생산이 멈추면 미국, 유럽, 일본 등 3,000여 거래처가 연쇄 부품 대란을 겪는다. 연료 없는 겨울은 유럽만의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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