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창비 발행)
저자 조형근, 2019년 '대학을 떠나며' 칼럼으로 화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20대 남성에게 ‘찌질하다’고 힐난하기 전에, 우리(86세대)가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이어 오는 과정에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희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답해야 한다." (사회학자 조형근)
한림대에서 강단에 섰던 조형근은 지난 2019년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을 발표하고 교수직을 사직해 화제가 됐다. 그는 칼럼에서 대학에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가 불가능해졌다고 고백했다. 대학이 겉으로는 ‘국민의 삶에 대한 직접적 기여’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자본을 위한 지식 연구에만 기여하는 공간으로 변했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상아탑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보편적 인간’을 위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집단마다 자신의 이익을 제일 먼저 앞세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과거처럼 ‘대의’를 강조하는 선전을 펼치면 역풍을 걱정해야 한다. 한국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만개한 듯 보이지만 조형근은 최근 내놓은 저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시대, 토론보다 상대를 조롱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전략이 환영받는 시대가 열렸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저자는 희생양을 찾지 않는다. 저서의 핵심은 저자 자신을 비롯해 이제는 ‘기득권’이 돼 버린 진보 지식인들의 책임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세상이 왜 이렇게 됐냐며 ‘86세대'에게 책임을 돌릴 때 화살은 '메이저 대학 출신 운동권'이었던 진보 지식인들을 향한다. 이들은 비교적 쉽게 전문직과 화이트칼라가 됐고 부동산 자산도 형성했다. 중산층에서도 상위층이다. 저자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노동시장 양극화를 86세대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도 그들의 잘못을 직시한다. “이들의 잘못이라면 그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어느덧 그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는 데 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 여러 선거의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 ‘20대 남자 책임론’이 불거졌다. ‘20대 개새끼론’의 변형인데, 저자는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이 불평등을 강화하는 사회 구조를 모르고 ‘능력주의’에만 매달린다는 것도 오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론 조사들을 살펴보면 능력주의 신념을 강화하고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흐름은 주로 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청년 남성들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통계적 추정일 뿐이지만 20대가 단일한 계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20대 남자 책임론'은 결국 86세대의 책임 회피에 다름없다. “이제 와서 20대 남성들에게 구조적 문제를 떠들어봐야 ‘설명충’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세대가 그렇게 키웠다. 나는 안 그랬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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