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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환투기 경보를 발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8월 초 1,300원 전후였던 환율은 미국 금리 인상 흐름과 국내 경기 불확실성 증폭 등에 따라 최근 13년간 최고 수준인 1,340원대를 돌파할 정도로 급등했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원화에 대한) 역외 투기적 거래 확대 가능성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사실상 환투기 경보를 발했다.
▦ 통화거래도 정상과 투기의 경계는 모호하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환율 변동에 따른 자산가치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달러를 보유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경우는 위험 분산(헤징)을 위한 정상거래로 볼 수 있다. 반면 투기는 단기 환차익을 노리고 환율을 인위적으로 움직여 조작하려는 의도까지 포함된 거래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숏세일즈(short-sales)’는 특정 통화가치 하락이 예상될 경우, 해당 통화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단기로 빌려(차입) 목표치만큼 통화가치가 하락할 때까지 투매해 차익을 노리는 일종의 공매(空賣)다.
▦ 일부 투기세력이 어떻게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이 고도화한 시장에선 몇몇 ‘큰손’ 등의 거래행태가 즉각 시장 전체에 공유되기 때문에 대세에 따른 ‘무리행동(Herd Activity)’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글로벌 통화시장 거래규모가 하루에 약 6조6,000억 달러에 이르는 가운데 투기적 무리행동이 지속되면, 4,386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한국 원화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 대개 환투기는 특정국 통화가치가 재정 및 무역적자, 불황 심화, 내외 금리차 등으로 지속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가 클 때 촉발된다. 과거 조지 소로스에 의한 영국 파운드화 공격, 1994년 월가 헤지펀드들의 멕시코 페소화 공격이 그런 예다. 물론 대부분 사례에서 외국인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 해당 통화국 경제사정을 가장 잘 아는 ‘내부의 적’, 곧 국내 투기세력이다. 최근 원화 투기세력 수사까지 거론되는 배경도 내부의 적을 겨냥한 것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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