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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7년 말부터 여러 시민단체의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족 등 이슬람 소수민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신장자치구 인권 조사 보고서는 이후 48쪽에 걸쳐 이 지역의 '직업교육훈련센터'에서 어떤 고문과 학대가 자행됐는지 낱낱이 폭로했다. 수감 경험자 26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인권사무소는 중국 당국의 처사가 반(反)인도 범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칠레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 인권최고대표가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기 13분 전 전격 공개된 보고서였다.
□ 어떻게든 보고서 발간을 막으려던 중국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직업센터를 극단주의자 갱생 기관이라 주장해온 중국은 바첼레트의 줄기찬 신장 현지조사 요구를 계속 피하다가 올해 5월에야 '우호 방문' 조건을 달고 응했다. 이때만 해도 중국은 양동작전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바첼레트와 영상회담을 갖고 환대하면서 "인권 문제에 유토피아는 없다"며 지그시 압박했다. 안 통하자 실력 행사에 나섰다. 바첼레트가 "40개국이 보고서 공개 우려 서한을 보냈다"며 부담을 호소할 정도였다.
□ 바첼레트를 적대시한 건 중국만이 아니었다. 해외 위구르 단체들은 인권사무소가 예고한 보고서가 3년 넘게 나오지 않자 바첼레트가 중국의 회유와 압박에 굴복했다고 의심했다. 인권 관련 언급이 없었던 방중 일정은 특히나 비난 대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바첼레트 임기 내 보고서는 물 건너갔다고 체념했던 단체들이 예상치 못한 보고서 발간에 한 번, 가차없는 내용에 또 한 번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 돌이켜 보면 바첼레트 또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다. 군부 쿠데타로 전복된 칠레 아옌데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던 그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회유를 거절했다가 수감돼 모진 고문 끝에 숨졌고, 바첼레트도 어머니와 함께 비밀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한동안 망명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번 보고서 발표는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사명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퇴임 성명엔 "인권 보호의 여정은 절대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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