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가을이면 분홍색 핑크뮬리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전국의 핑크뮬리 명소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핑크뮬리는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며,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지정된 관리 대상 식물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방비 상태로 다가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생태계 위해성 2급은 국내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생물 다양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 위해성 1급은 ‘생태계 교란 생물’로, 수입·유통·재배 등이 금지된다.
핑크뮬리는 그 위해성을 잘 억제하면서 관리하면 굳이 갈아엎지 않고 곁에 오래 두고 즐길 수 있다. 물론, 관리자와 관람객의 수칙이 준수된다는 전제 하에.
국립생태원 외래생물팀 이수인 박사는 5가지 수칙을 제안했다. ①관람객은 가급적 핑크뮬리 군락지 안으로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하거나 꽃을 만지지 않는다. 옷이나 신발에 종자가 붙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②관리자는 핑크뮬리의 화서가 핑크빛에서 회색빛으로 변하는 11월 중순에는 꽃과 줄기를 모두 수거해 소각한다. 꽃과 줄기 역시 방치할 경우 퍼질 수 있다. ③핑크뮬리 제거 시 종자 및 식물체를 밀봉 운반해야 한다. ④핑크뮬리 식재지 토양 내 종자가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토양 이동을 제한한다. ⑤주기적으로 식재지 주변 지역에 핑크뮬리의 자연 발아 및 정착 개체를 확인하고 제거한다.
핑크뮬리의 원산지는 미국이다. 주로 서부와 중부 평야 지대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생명력이 강하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2014년 제주도의 한 자연생태공원에서 조경용으로 처음 식재를 했다가, SNS에서 ‘핫 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2018년경 환경부가 ‘관심 외래식물’로 분류하고 1년 동안 조사한 끝에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공식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2019년 환경부가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핑크뮬리가 조성된 곳은 공원 및 개인 농장 등 총 37곳으로 축구장 14개 면적에 해당한다. 다행히 위해성 2급으로 지정된 이후 각 지자체에 식재 자제를 통보하고 군락지를 점차 제거하면서 재배 면적은 더 이상 늘지 않고 있지만, 핑크뮬리 군락지를 아예 갈아엎은 곳도 있다. 울산시는 올해 울산대공원 핑크뮬리 군락지를 없애고, 그 자리에 동백정원을 조성했다. 거제시도 거제식물원 진입로에 조성된 핑크뮬리 단지를 철거했다. 첨성대가 있는 경주시는 동부사적지에 조성한 핑크뮬리 단지만 유지하기로 하고 추가 조성계획을 철회했다. 서울에서도 강남구 양재천변 핑크뮬리 군락지가 수해로 황폐해진 후 재조성보다는 다른 품종을 심는다는 계획이다.
한때 가을 인생사진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핑크뮬리가 푸대접을 받는 사이 이번엔 댑싸리가 대체품종으로 급부상했다. 댑싸리 군락지는 동글동들한 모양의 수목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마치 동화 속 세상 같은 느낌을 준다. 여름에는 초록색이지만 가을이 깊어가면서 점차 붉게 변한다.
댑싸리는 1921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외래종이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귀화식물이다. 시골 마당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식물로 식용과 약제로도 쓰였고, 말려서 빗자루도 만들었다.
아무리 친근하다 해도 외래종인데 위행성은 없을까? 농촌진흥청 김진원 박사는 “댑싸리는 생태 특성상 종자의 생존율이 1~2년 정도라 인공적으로 파종을 하지 않는 이상 번지지 않고, 핑크뮬리에 비해 우리 식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꽃이 피는 시절인 6~7월은 꽃가루에 의한 알레르기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건강을 위해 댑싸리가 붉게 물들기 전에는 가급적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핑크뮬리와 댑싸리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은 송파구 올림픽공원과 마포구 하늘공원이다. 올림픽 공원의 핑크뮬리는 최근 대부분 분홍색으로 변해 있어, 휴일이면 관람객들이 몰려온다. 올림픽공원 관리자는 “사진 촬영을 위해 핑크뮬리 군락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암동 하늘공원의 핑크뮬리는 올림픽공원에 비해 면적이 작은데, 식재 면적을 늘리지 않고 울타리를 설치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가을 날씨가 완연한 주말을 맞아 전국의 핑크뮬리와 댑싸리 명소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생태원의 5가지 수칙을 잊지 말고 눈으로만 즐기며 가급적 멀리서 카메라에 담아 보자. 식물 생태계를 지키고 호흡기 건강도 지키는 길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