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반도체 중요성을 설파한 덕에 ‘파운드리’란 말이 꽤나 익숙해졌다. 설계 회사인 ‘팹리스’가 고안한 대로 반도체를 대량 제조하는 위탁생산 회사다. 반도체 기업들은 처음엔 삼성전자처럼 전 공정을 다뤘지만, 점차 설계와 생산을 각각 맡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분업화, 전문화했다. 공정마다 고도의 기술과 큰 비용이 필요한 데 따른 전략적 선택이다. 바이오도 반도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바이오 파운드리가 성장하고 있다.
□ 바이오 파운드리는 위탁생산과 함께 일부 설계 공정도 포함한다. 의약품이나 식품, 환경 산업에서 제품마다 다른 바이오 물질이 필요할 때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식품 제조에 특정 아미노산이 필요하다고 치자. 아미노산은 주로 미생물 발효를 거쳐 얻는다. 바이오 파운드리에 의뢰하면 필요한 아미노산을 생산할 수 있는 맞춤형 미생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대량 배양해 적절한 원료를 가한다. 그럼 미생물들이 자기 효소와 원료를 이용해 아미노산을 생산해낸다. 식품 회사는 이걸 가져다 제품을 만들면 된다.
□ 바이오 파운드리의 근간은 합성생물학이다. 미생물이나 핵산 같은 바이오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하는 원천기술이다. 기업이나 기관이 개발한 합성생물학 기술을 상업화, 자동화하고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바이오 파운드리의 역할이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도 바이오 파운드리 덕에 세상에 나왔다. 주 원료인 유전자(mRNA)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핵산을 미국 민간 바이오 파운드리가 대량생산해줬다. 영국은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를 육성한다.
□ 미국이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에서도 자국 생산을 강조하는 데는 바이오 파운드리 확대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은 세계적인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업체지만 바이오 파운드리는 아직 아니란 평가다. 우리 바이오 파운드리를 키우면 바이오 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토대로 삼을 수 있다. 다음 달 캐나다에서 글로벌 바이오 파운드리 연합이 모이는 자리에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협의체가 참가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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