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크림 병합 땐 침묵했던 서방국
한목소리로 "주민투표 절대 인정 못 해"
동원령 이후 러시아 내부 민심도 '싸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강제 병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립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가 실시한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동원령 발표 이후 러시아 내부에서도 냉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일사천리로 병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푸틴 대통령의 일방통행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전쟁 출구전략’마저 사라지면서 그가 오히려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2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이번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은 8년 전 크림반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최남단 흑해와 접해 있는 크림반도를 점령한 뒤 주민투표를 거쳐 속전속결로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 주민 투표→의회 비준→합병 승인 등 모든 절차를 끝내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였다. 당시 주민 투표 찬성률은 96%에 달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크츠·루한스크주(州) △남부 헤르손 △자포리자주 등 4개 점령지에서 진행한 주민투표 지지율 역시 90%를 넘었다. 표면상으로는 러시아가 8년 전과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러시아 내부 반응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2014년 당시 대응 여력이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밀려드는 러시아군에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등 서방국은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무혈입성을 지켜만 봤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손에 완전히 넘어간 뒤에야 부랴부랴 무기금수, 자산동결 등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이 때문에 ‘군사강국’ 러시아를 두려워한 서방이 침묵 속에 크림반도 병합을 사실상 묵인했다는 비판도 커졌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180도 다르다. 서방 주요국과 국제기구는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절대, 절대,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절대(never)’라는 단어를 세 차례나 연속으로 사용하며 투표 결과를 부인한 셈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병합을 강행할 경우 러시아 주요 인사에 대한 제재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 영토를 무력이나 위협으로 병합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잘라 말했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의 전통적 동맹국조차 러시아의 영토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시리아, 북한, 벨라루스 등 소수를 제외하면 병합을 지지하는 국가가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빠르게 고립되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내부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21일 정부가 예비군 30만 명 부분 동원령을 발표한 이후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 반전(反戰) 시위가 이어지는 것은 물론, 엑소더스(대탈출)마저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푸틴 정부가 공권력을 이용해 반발을 통제하고 있지만, 동원 대상이 민간으로 확대될 경우 언제든 민심이 ‘분노 임계점’을 넘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성인 1,63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47%는 동원령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고 답했다. ‘충격(23%)’, ‘분노·분개(13%)’ 등 부정적 감정이 주를 이뤘다.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을 두고 불편해하는 시선이 나온다는 관측도 있다. 강제로 영토를 합병하는 행위가 러시아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도박수’가 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의 토머스 그레이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옛 영토이자 핵심 일부로 보지만 러시아인이 그 견해에 수긍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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