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일본 젊은층의 이유 있는 처세술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것일까?
일본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동료 선생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참 착해요”. 사실 이 말이 일본 젊은이들의 심성이 곱다는 칭찬은 아니다. 착하다는 말 끝에는 꼭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라는 묘한 첨언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해야 하는 일이나 숙제가 주어지면 대체로 성실하게 수행해 낸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착하고 성실하다. 반면,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규칙이나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은 좋지만, 기존의 질서 속 모순이나 불합리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집단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드물지만, 개인의 의견이나 취향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도 꺼린다. 젊은이들의 착하지만 너무 순응적인 모습이 기성세대에게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젊은이들의 이런 경향을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 ‘증후군’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로 정의할 정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요즘 대학생들이 가능한 한 튀지 않게 행동하려 한다는 설명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를 들어,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다섯 명이 순서를 정하면 세 번째나 네 번째를 선호한다”, “리더 역할은 맡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웬만하면 묻지 않는다”, “실명보다는 익명으로 할 말이 많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는 것은 딱 질색이다” 등등. 내가 재직했던 대학은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의사 소통에 적극적인 재학생이 많았고, 다른 대학에 비해 캠퍼스 분위기도 활기찬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거론된 증상들이 학생들의 행동 패턴과 꽤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꼈다.
◇“튀고 싶지 않다”는 일본 젊은이들
사실 대학생이 대학교수에게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학생들과 격의없이 지내는 대학교수도 있지만, 결국 한쪽은 점수를 매기고 다른 쪽은 평가를 받는 일방적인 사회적 관계다. 대학교수의 눈에 ‘착한’ 대학생이 많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예전에는 교수들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지거나 자신의 의견을 내밀어 선생의 주장에 반론을 펼치는 씩씩한 학생이 적지 않았다는 원로 교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과거에는 평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튀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일본의 대학생들은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의식도 옅은 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들의 성실함과 순응적 태도가 딱히 평가자를 의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괜히 무리에서 튀는 짓을 하면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자기 보호 의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학 졸업을 앞둔 일본의 젊은이들은 보통 ‘취업 슈트’라고 부르는 정장을 구입하는 것으로 취직 활동을 시작한다. 검정색 정장은 취직 준비를 하는 대학생의 ‘유니폼’이다. 채용 박람회장이나 채용 시즌에 기업 사무실이 많은 지역에 가면 어김없이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젊은이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대기업을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채용이나 면접 과정에서 취업 슈트를 입으라는 의무 사항을 삭제한 지 오래다. 창의력과 개성이 있는 인재를 원하는 만큼, 채용 공고에 일부러 ‘사복 가능’, ‘복장 자유’ 등의 문구를 넣는 기업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여전히 취업 슈트를 입는다. 한번은 취업 준비생에게 이유를 물은 적도 있는데, 사실 그도 모두 똑같은 정장 차림으로 취직 활동을 하는 상황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만 개성을 드러내는 사복을 입으면, 인사담당자에게 과도하게 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면접에서도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을 확률도 커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리스크를 감안하면 취업 슈트를 입는 게 제일 ‘안전’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그의 답변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공적으로는 아싸, 사적으로는 인싸로 사는 젊은이들
한국에서 종종 회자되는 ‘인싸’ 혹은 ‘아싸’라는 말이 있다. 인싸란 영어인 ‘인사이더’(insider)의 은어로 무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사소통을 잘하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은어로 무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딘가 겉도는 사람을 뜻한다. 언뜻 들으면 인싸는 소통에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아싸는 내향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을 뜻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말의 쓰임새를 잘 살피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인싸로 사는 삶에는 돈이 많이 든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단톡방에서는 그냥 아싸로 남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즉, 인싸와 아싸는 개인이 타고난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성향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싸로 살 것인가, 아싸로 살 것인가'라는 것은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연출할 것인가에 관한 자기주도적인 선택이 개입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튀고 싶지 않다”는 일본 젊은이들의 전략은 전형적인 아싸 노선이다.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소통하는 인싸는 사회적 보상도 크지만 리스크도 크다. 대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으로 순응하는 아싸 캐릭터를 실천하는 것은, 사회적인 보상도 적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작은 ‘로키’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늘 아싸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강의 시간에는 얌전하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말도 많고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리드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 모임이나 취미 활동 동호회 등 사적인 기호와 취향으로 뭉친 단체나 상황에서는 100% 인싸 기질을 발휘하기도 한다. 공적인 상황에서는 순종적인 아싸 캐릭터를 선호하지만, 사적인 상황에서는 열혈 인싸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일본의 젊은이들. 사회적으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사적인 영역을 굳건하게 지켜낸다는 의미에서는 꽤 효과적인 처세술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젊은이뿐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와 닿는 서바이벌 전략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금과옥조로,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지 않도록 평범함을 연출하며 살아가는 것도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이 칼럼에서 언급된 ‘착한 아이 증후군’은 金間大介 (2022) 『先生、どうか皆の前でほめないでください―いい子症候群の若者たち』(東洋経済新報社)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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