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중소기업 임원이 전해준 얘기다. 그는 최근 회사 간부 휴대폰을 아이폰 기종으로 모두 교체하고, 삼성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폰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직원이 회사에 불만을 품고 퇴사했는데, 혹시나 수사받을 것에 대비한 조치였다고 한다. ‘아이폰으로 바꾸면 안전하냐’고 묻자 “알면서 뭘 물어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주변에 갤럭시 쓰다가 아이폰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휴대폰 기종만 바꾼다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수사 좀 해봤다는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만 해도 검찰 내부에선 기업이 압수수색에 너무 철저히 대비해 수사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헬기를 띄워 야간에 공수 작전하듯 본사 건물로 침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검사도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검찰의 고민은 일거에 해소됐다. 인간의 모든 정보가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에 깨알처럼 저장되다 보니, 휴대폰만 확보하면 사실상 수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무실과 집, 차량과 신체도 뒤져보지만, 휴대폰의 가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압수수색 현장에서 휴대폰을 확보한 수사관은 기쁜 마음에 ‘빙고’라는 메시지를 보내 초조해하는 검사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라느니, 한강에 버리라느니, 망치로 부숴야 한다는 ‘휴대폰 잔혹 스토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검찰 쪽 인사들 설명을 들어보면,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폰은 비밀번호를 몰라도 기술적으로 대부분 포렌식이 가능하다. 휴대폰만 압수해오면 통화내역과 메시지, 녹음파일 등 저장된 정보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폰은 비밀번호를 모르면 해제가 불가능해 100개를 압수해와도 무용지물이다. 당사자가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증거로서 가치가 없다. 현장에서 아이폰을 압수한 수사관이 ‘빙고’ 대신 ‘아이폰’이란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도 ‘좋다가 말았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참고인이든 피의자든 사람들은 그동안 검찰의 권위에 겁을 먹고 너무 쉽게 수사에 협조했다. 특히 순진한 사람일수록 검사와 수사관 말을 하늘처럼 받아들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살면서 처음으로 수사받는 사람은 평생 수사만 해온 사람이 말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오라고 하면 나와야 하고, 비밀번호 읊으라고 하면 말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 가장 손해를 본다는 말은 검찰청 내에서도 통하는 불문율이 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아이폰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은 것은 법적으론 전혀 문제가 없지만, 사람들에겐 다른 방식으로 각인됐다. 아이폰을 사는 게 보다 안전하고 검찰이 비밀번호를 요구해도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엔 갤럭시도 아이폰을 능가할 정도로 보안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한동훈 각인 효과'로 묻혀버렸다.
순진한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으려면 수사를 가장 잘 안다는 검사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판단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검사들이 수사를 받게 되면 증거가 꽉꽉 차서 목구멍까지 올라오기 전까진 수사에 협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도 수사에 협조하는 법보다는 빠져나가는 법을 주로 알려준다. 그런데 검사가 수사할 때 상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떳떳하면 수사에 협조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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