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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공방의 승자와 패자

입력
2022.10.12 18:00
수정
2022.10.12 18:13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진석(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진석(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 공세는 또 한번 국민의힘에 상처를 남겼다. 대대적 반격 와중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며 식민사관을 드러내 친일 이미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여당 내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그를 비판했다. 이 대표로선 야당 지지층은 결집시키고 여당 이미지를 흠집 낸 데다 균열까지 일으켰으니 승자로 여겨질 법하다.

□ 친일·반일 공방의 지지층 결집 효과는 문재인 정부 시절 뚜렷이 확인됐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후 일본의 무역 보복에 문 전 대통령이 ‘극일’을 내세우며 버틴 2019년 7월 국민 여론은 ‘잘 대응하고 있다’(50%, ‘잘못 대응’은 36%)는 쪽이었고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했다. 앞서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해서도 ‘잘한 결정’(63.2%)이라는 여론이 ‘잘못한 결정’(20.5%)을 압도했다. 2019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SNS에 올림으로써 과거 ‘빨갱이’ ‘종북’만큼 강력한 선동의 도구로 ‘친일’이 등극했음을 각인시켰다.

□ 사실 ‘반일 감정을 이용한 정치’는 문 정부만의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하락세였던 지지율을 9%포인트나 끌어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1,000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는 강도 높은 3·1절 연설을 하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아베 일본 전 총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등 위안부 합의 전까지 반일 행보를 걸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양국 관계 경색은 이런 시간이 쌓인 결과다.

□ 한국 (그리고 일본)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를 위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고조된 반일 감정이 관계 개선의 여지를 좁히는 악순환을 자초했다. 악순환을 깨려는 윤 정부의 시도는 의미가 있지만 식민사관에 기대어 성공할 수는 없다. 이 대표는 눈앞의 승리만 좇다가 일본을 배제한 안보가 가능하냐는 무거운 과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정진석, 이재명, 국민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일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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