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 '선제 개방' 밝혀
청사진은 아직… 관련법, 여론 등 산 넘어야
'공감대, 연구 접근성, 대북 압박' 긍정 효과
상호개방 목적이지만 '北 무반응' 감안해야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총리 답변 들으니 ‘친북좌파’ 정부가 아니네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0월 1일 국회 대정부질문. 하태경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시청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가 "검토해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이 돌아오자 한 말입니다. 이어 하 의원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뒤끝을 남겼습니다. 진보정부를 향해 보수적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당시 남북정상이 수차례 판문점에서 만나고 각 분야에서 양측 고위급 교류가 활발해 한반도에 그 어느 때보다 훈풍이 불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총리는 '북한 매체 개방'에 대해 쉽사리 언급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주제라는 것이겠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반면, 자칫 '북한 선동 매체에 우리 국민을 노출시키려는 것이냐'는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색깔론' 공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보수 정부는 부담이 덜할지 모릅니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요.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대북 정책 중 하나로 북한 매체를 개방하겠다고 밝히며 의욕을 보였습니다. 통일부는 7월 윤 대통령에게 '언론, 출판, 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을 통해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가며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겠다'고 보고했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국회에 출석해 "선전보단 사실보도 위주로 먼저 개방하고 차차 문화 등으로 폭을 넓혀가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아직 선제적 개방 범위와 방식을 포함해 모든 사안을 검토해봐야 하는 단계라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계속되는 상황도 부담입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밝힌 이상 남북관계에 두고두고 상당한 파장을 미칠 만한 주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북한 매체 접근을 가로막은 오랜 장벽을 분단 70년 만에 깨겠다고 공언한 것이니까요.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이번 구상은 왜 필요하고, 실제 우리 국민들이 안방에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걸림돌을 넘어서야 할까요.
국가보안법, 선동 우려 여론… 산 넘어야
우선적인 족쇄는 북한 매체 유포를 제한하는 여러 국내법이 꼽힙니다. 반국가단체 고무, 찬양 등 목적의 표현물 제작·수입·소지·반포 등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 7조 5항이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국가보안법과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 유통금지 조항에 따라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 시청만으로 처벌하는 규정은 아닙니다. 지금도 위성수신기만 설치하면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고, 불법이 아닙니다.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접속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권영세 장관은 "사실보도 매체라면 법 개정 없이 (개방)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국가보안법 7조는 찬반 논란이 치열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숱하게 '독소조항' 비판을 받아왔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매체 개방의 범위와 방식은 관련법에 근거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개방할 경우 법 위반행위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국가보안법 7조는 과거 7번의 합헌 결정 이후 현재 8번째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라 있는데요. 정부도 헌재의 결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법규정 외에, 북한 매체에 노출되면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대남 선전선동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여론도 극복해야 할 요인입니다. 북한 주요 매체인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는 모두 당과 내각의 지도로 운영되며 철저하게 북한 정권의 선전전을 목표로 합니다. 정부가 '사실보도'로 공개 검토 대상을 좁히려는 이유입니다.
손흥민 경기장면 빼고 내보낸 조선중앙TV의 꼼수
그런데 북한에서 대남 선전우려가 없는 매체가 있기나 할까요? 최근 들어 북한의 보도 형태에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의 선택지가 넓어지긴 했습니다. 2020년 제9호 태풍 '마이삭' 북상 소식을 보도할 때 취재기자가 현장에 나가 실시간으로 피해 현장을 보여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대체로 피해 상황보다는 발전상을 보여주고, 재난 상황을 전하더라도 미리 편집된 영상을 송출하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죠. 올해 7월 조선중앙TV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등 유럽 축구리그 주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 대해선 '북한 휴대폰 보급률 증가에 따라 해외 매체를 상대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방송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변화일 뿐, 체제를 선전하려는 북한 매체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 북한은 EPL 주요 장면을 방송하면서도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의 모습은 쏙 빼놓았습니다. 북한을 훌쩍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싫었던 겁니다.
"공감대 회복, 연구 접근성, 대북 압박 위해선 개방해야"
이처럼 논란과 제약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굳이 북한 매체 개방을 검토한다는 것일까요? 사실 대북 정책 관계자들이나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상당수가 절실하게 필요성을 말합니다. 먼저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통일부도 언급한 '공감대' 문제입니다. 한 소식통은 "과거에 비해 남북 교류가 눈에 띄게 줄면서 서로에 대한 이질감이 해결 불가한 수준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서로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매체 교류가 중요한 방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매체들을 꽁꽁 싸매다 보니 정상적인 연구 활동까지 제약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령 노동신문 원문을 비롯해 북한 영화와 잡지 등을 공식적으로 열람하는 방법은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자료센터 외에 딱히 없는데요.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자료열람을 요청할 때마다 위법 여부를 의식해야 하는 '자기 검열'을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에 북한 연구자들은 과거 정부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매체 개방의 필요성을 제안해왔습니다. 7월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도 비슷한 의견이 정부에 전달됐다네요.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 할 말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먼저 문호를 활짝 열어 놓는다면 국제사회와 단절된 북한의 폐쇄성을 더 통렬하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외부 정보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밀반입한 주민을 총살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죠. 정부는 유엔 등에서 북한의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국민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며 북한 매체를 향해 전향적 판단을 내린다면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훨씬 힘이 실릴 것입니다.
선동? 北 반응? 둘 다 없을 수도
앞서 살펴본 찬성과 반대 양측 입장은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가령 경제력을 비롯해 남북 간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 현 상황에서 '선동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과연 현실에 부합할까요. 한 연구자는 "학생들에게 공부 차원에서 북한 매체를 읽으라고 강조해도 선동 내용으로만 가득하고 재미가 없어서 안 읽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매체를 개방하면 억압된 북한의 실상을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효과 역시 단정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북한 매체를 개방한다면 북한을 향해서도 남측 매체를 개방하는 상호조치를 요구할 텐데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독일 사례를 언급하긴 합니다. 서독은 분단 이후 통일이 될 때까지 동독 방송을 금지한 적이 없고, 동독은 1960년대에 서독 방송을 금지했다가 1973년 허용한 사례입니다. 동독 방송은 서독 체제에 위협이 되지 못한 반면 방송 상호 개방은 독일 통일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죠.
다만 당시엔 동독이 허용하기 전부터 국민 절반가량이 서독 방송을 시청하면서 통제에 실패하고 있었다는 점 등 현재 북한과 차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방을 하더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동질성 회복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고민해봐야겠지요. '당국이 선전하고 싶은 모습만 보여줘 오히려 북한의 전체 모습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합니다.
이렇게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다 보니 '정부도 여론 눈치 보기만 하다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겠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보를 싸매는 것이 어떤 실효가 있는지, 국민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라도 재검토는 필요해 보입니다. 남북대화가 꽉 막힌 상태에서 과감한 선제 조치가 의외의 변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할 수도, 반대로 국내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는 '판도라의 상자'인 셈입니다. 정부가 예상되는 효과들을 바탕으로 면밀하게 균형점을 찾기를, 북한 매체 개방이 보여주기식 제안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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