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0·20대가 열광하는 힙합 경연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시즌11로 돌아왔다. 초반 대결에선 초·중학생 참가자가 많아진 게 눈에 띄었다. 힙합의 저변이 그만큼 넓어졌다. 젊은이들은 노랫말은 물론 입담으로도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스웨그’와 상대방을 저돌적으로 깎아내리는 ‘디스’ 같은 힙합 특유의 문화를 거침없이 소비한다. 더 나은 무대를 선보인 경쟁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참가자들 모습은 늘 반짝반짝 빛나기만 해야 할 것 같은 K팝 아이돌과 묘하게 구별된다.
□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란 말이 유명해진 건 1996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 덕분으로 알려져 있다. 미식축구 선수(쿠바 구딩 주니어)가 스포츠 에이전트(톰 크루즈)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요구할 때 나온 대사다. 의역하면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달라'는 의미다. 최종 우승을 거머쥐기 위해 래퍼들이 다양한 경연 방식으로 실력과 개성을 뽐내는 프로그램 제목으로도 꽤나 어울린다.
□ 한때 쇼 미 더 머니는 PC방 단골 문구였다. 19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붐이 일었던 온라인 게임 스타 크래프트 때문이다.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하는 도중에 채팅창에 이 말을 입력하면 병력을 생산하고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이 추가로 공급됐다. 그 시절 PC방을 주름잡았던 세대에게 이 문구는 마법 같은 주문으로 기억됐다. 쇼 미 더 머니 하면 스타 크래프트를 떠올리는지 랩 경연을 떠올리는지에 따라 ‘아재’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 쇼 미 더 머니는 시대의 흐름을 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공서열이나 인맥보다 실력과 열정으로 평가받길 원한다. 그들이 능력을 펼칠 사회적 무대가 너무 좁은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쇼 미 더 머니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사회재난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미덥지 않다. 다음 주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꼬박 반년이다. 이젠 정말 능력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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