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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 주민들이 중간선거 사전투표를 위해 우편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동안 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2명의 남성이 투표함 주변에 서 있다. 이 장면을 그 지역 선거 사무소가 트위터에 공개했다. 미 애리조나주 법원은 지난달 28일 이런 명백한 투표 방해 금지를 요청한 소송을 기각했다. 담당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이후 애리조나에서는 선거 부정을 방지한다며 총을 든 사람들이 투표함 주변을 서성댄다.
□ 미국 선거 역사와 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남북전쟁 직전인 1850년대 이민자 배척을 내세우며 바람을 일으켰던 ‘노우낫싱당’(Know-Nothing party)이 소수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래 총은 소수자의 참정권 행사를 막는 데 효과적 도구였다. 그리고 이 어두운 역사를 다시 소환한 것은 트럼프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지난 대선 패배가 민주당의 선거 조작 때문이며, 우편 투표가 부정 위험이 높다고 주장해왔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총을 들고 우편 투표함 앞을 지키는 이유다.
□ 애리조나의 사전투표 상황을 두고 미연방법무부는 “무장한 개인이 유권자를 위협하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고 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미국 전체 투표소에서 총기 휴대를 완전히 금지하는 주는 50개 주 중 7곳뿐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민주 공화당 지지자 비율이 비슷해 미국 선거를 좌우하는 ‘스윙 스테이트’인 플로리다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은 모두 투표할 때 총기를 휴대할 수 있다. 총기는 미 선거 판세에 중요한 변수다.
□ ‘총을 든 선거’는 더 이상 소수자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반대당 유력 정치인을 협박ㆍ공격하고, 공공연히 ‘불복’을 공언하며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결국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투표소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총격 대비 훈련을 실시하는 지역도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평소에는 투표가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다”고 호소했다. 반대파엔 당파적 선거 전략으로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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