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이 출국했다. 캡틴 손흥민도, 에이스 이강인도 극적으로 합류한다. 우리가 벤투호 최종 명단에 온통 관심이 쏠린 사이 유럽에선 카타르 월드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독일에선 ‘보이콧 카타르’ 캠페인이 확산됐고, 영국은 참가 찬반 논란으로 양분됐다. 프랑스는 거리응원을 안 하기로 했다. 첫 겨울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빛이 바랬다.
□ 6,500여 명. 월드컵 유치 이후 카타르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진 노동자 수다.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지에서 넘어간 이들은 경기장을 비롯한 월드컵 인프라 건설에 투입됐다. 외신과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이들은 열악한 숙소에서 일주일에 70시간이나 혹사당하며 임금은 카타르 평균의 2%밖에 못 받았다. 취업알선료까지 뜯겼고, 여권마저 빼앗겼다. 이제 와선 귀국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개막일이 다가오니 카타르 정부는 노동자 말고 관객이 필요할 터다.
□ 칼리드 살만 카타르 월드컵 홍보대사는 최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동성애자들이 카타르에 오는 건 괜찮지만, 우리 규칙을 인정해야 한다”며 조건을 달았다. 카타르에선 동성애가 불법이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미드필더 레온 고레츠카는 살만을 “1,000년 전에 사는 남자”라고 직격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은 “호스트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 덴마크 대표팀은 유니폼에 ‘모두를 위한 인권’ 문구를 새기겠다고 했다. 이를 국제축구연맹(FIFA)이 막아섰다. 앞서 참가 팀들에 경기를 이념적, 정치적으로 끌고 가지 말고 축구에만 집중하라고 한 권고의 연장선이다. 유럽 선수들은 인권 존중 요구가 왜 정치적이냐고 따져 묻고 있다. 이 와중에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빈 자심 알 사니 카타르 외교장관은 영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국 인권 논란을 서방 언론의 오보라며 깎아내렸다. 스포츠맨십은 인권 존중과 다르지 않다. 개최국의 번영과 자부심, 축제와 승리의 기쁨 그 어느 것도 노동자와 성소수자 인권 외면을 정당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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