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50만8,030명이 지원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7일 치러졌다. 졸업생(14만2,303명)과 검정고시 합격자(1만5,488명)가 31.1%를 차지, 그 비중이 1997년 이후 가장 많았다. 졸업생이 늘어난 것은 정시확대, 문·이과 통합수능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작년 통합수능으로 이과생에게 밀려났던 문과생, 군 복무 중 대학을 바꿔보려는 군수생 등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어느 사회나 대학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입시는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 우리의 경우 입시는 학생 잠재력이 아니라 경쟁과 성적을 요구하는 학부모, 학교에 의해 준비되고 기획된다. 입시생이 지나온 시간은 결국 시험의 연속이었다.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실수하고 실패해도 지우고 다시 시도해야 했다. 그렇게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13시간 이상 공부해도 단 한번의 시험에서 실패하면 모든 게 무위가 되기 쉽다. 과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칭찬했던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 경쟁력은 그렇게 뉴욕타임스의 ‘아동학대’로 표현됐다. 하지만 당국은 대학 입시제도를 바꿔 달리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도 더는 하지 않는다.
□ 재미난 것은 중·고교를 가장 편하게 보낸 5공화국의 과외금지 세대다. 1980년 신군부의 과외금지 조치가 88년 본격 해제되기 전까지 이들은 교육사에서 없던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사교육은 물론 논술, 본고사도 없던 당시 학생들은 한편으로 가장 학력이 낮았던 세대다. 그런데 공부하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벤처 붐을 이끌고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우고 있다. 유수 대학 문턱을 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이뤄낸 것은 열정, 모험 등 다른 조건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 수능을 앞두고 구독자 96만 명을 가진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문상훈씨가 쓴 짧은 글이 공감을 일으켰다. 문씨는 “어른들이 원래 겁이 많아 수능이 큰일인 것처럼 말했을 수도 있다”며 “근데 사실 진짜로 별거 아니고 다들 잘 산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는 “어른들의 응원은 ‘잘 보라’는 의미보다는 ‘못 봐도 상심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나”라고 조언했다. 정말 ‘낙담하지 말라’는 응원에는 기성세대의 인생 체험이 배어 있다.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