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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포르노' 논란

입력
2022.11.18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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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찾아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찾아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치권이 난데없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 캄보디아 방문 중 심장질환을 앓는 14세 소년의 집을 찾아가 이 소년을 안고 격려한 사진과 동영상을 대통령실이 공개하면서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하자 국민의힘에서는 인격모독이라 반발했고 16일에는 급기야 장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 빈곤 포르노는 서구의 구호단체들이 아프리카, 동남아 등 개도국 빈민 지원 모금을 유도하기 위해 이들을 동정적으로 보이도록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학술 개념이다. 1980년대 초 에티오피아의 대기근 사태가 알려진 후 각국 구호단체들은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를 모금에 활용했다. 구호단체들이 개도국 국민들을 피골이 상접한 모습, 무기력한 눈동자, 부풀어오른 배 등으로 전형화하자 이 개념이 등장했다. 에티오피아 대기근 때 모인 후원액은 1조9,000억 원에 달한다.

□ 기부 효용성을 최대한 높이는 전략으로는 성공했지만 이런 식으로 고통의 속살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사생활 침해라는 윤리 문제를 낳는다. 또한 개도국 사람들의 빈곤에는 계급, 인종, 무역정책 등 복잡한 맥락이 있는데도 빈곤 포르노는 이를 은폐하고 단순히 ‘음식이 부족한 문제’로 착각하게 할 수도 있다. ‘굶주린 아프리카인의 몸은 제3세계를 지배하는 제1세계 권력의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이라는 표현은 빈곤 포르노의 본질을 꿰뚫는다. 노르웨이의 학자 지원 재단이 매년 빈곤 포르노로 간주되는 모금활동을 한 자선단체를 선정해 ‘녹슨난로상’을 시상하는 이유다.

□ 김 여사의 개도국 빈곤 아동 방문을 야당이 굳이 ‘빈곤 포르노’로 지칭한 일은 용어의 선정적 효과를 노린 정치 공세로 비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내조에 전념하겠다던 김 여사가 홍보성 동영상을 배포하는 등 스리슬쩍 자기 홍보성 활동 반경을 넓혀가면서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정치권은 이를 정쟁 소재로만 삼지 말고 이참에 제2 부속실 설치 등 영부인의 외부 활동을 공적으로 통제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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