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과 이태원 상인, 주민, 소방관 등 28명이 전하는 새해 소망
애도와 위로, 희망과 격려 등 다양한 의미 스케치북에 적어
‘지민아,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새해 소망을 물었는데 불쑥 그리움이 튀어나왔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오지민씨의 어머니 김은미(51)씨는 꿈에서도 딸을 그린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것 같아요. 우리 지민이 한 번만 보고 싶다.” 엄마는 딸의 빈자리를 실감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진다. “지민이 카카오톡 프로필 보니까 오늘이 D-38이더라고요. 퇴사한 뒤 정해둔 기간에 하고 싶었던 걸 다 한다는 의미 같아요. 기다리던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우리 애는 없구나…"
지민씨를 비롯해 158명이 참사로 목숨을 잃은 지 오늘로 64일째, 이태원의 세밑은 스산하다. 광장의 시민분향소에선 유족의 흐느낌이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상인들은 오늘도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점포 문을 연다. 매일 참사 현장 앞을 오가는 주민들, 사고 당일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들, 시민분향소를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일상에서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다시는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지배하는 곳, 이태원에서 희망을 떠올릴 수 있을까. 본보는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해 2022년을 보내는 이 순간에도 그날의 참사를 겪어내고 있는 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4명, 이태원 상인 14명, 주민 7명, 소방공무원 2명, 자원봉사자 1명 등 총 28명이 애도와 위로, 희망, 격려 등 저마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적었다.
유가족들은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막말과 무단 신원공개와 같은 2차 가해가 횡행하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 앞에 섰다. 연년생 동생을 잃은 진세빈(22)씨는 스케치북에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는 국가’라고 적었다. 세빈씨는 사고 전주 학교 축제에 동생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날 제 동생이 축제에 놀러온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저는 정치도 경제도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 송후봉(60)씨는 새해에는 좀 더 나아진 정부의 대처를 기대했다. "대통령이 지키겠다고 한 공정과 상식이 이태원에선 없었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이 유가족들 앞에서 사과하고 그날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지역 상인들은 트라우마 속에서 생계 위협과 싸워야 하는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다. 이태원 언덕에서 주류 판매업을 하는 김정수(26)씨는 참사 당일 개업 이래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행복함을 누릴 새도 없었어요. 안에 있으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그제서야 뉴스를 봤고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어서 집으로 서둘러 갔죠.”
상인들은 죄책감과 두려움, 슬픔 등 복잡한 감정에 시달리면서도 가게를 다시 열었다. 남는 식재료를 처리하기 위해 요리를 해서 나누는 일도 빈번하다.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초입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대연(25)씨는 “알바생 3명을 자르고(해고하고) 난 뒤 14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내 “제가 힘든 것에 비해 유가족 분들은 어떨까요"라며 "부디 새해에는 안전하고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방촌에서 5년째 태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태국 국적의 파우(45)씨는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동시에 이태원의 회복을 꿈꿨다. “제 식당에 적정 인원만 들이듯 그 골목에서도 인원 통제를 했어야 해요. 이태원은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인데 전체적으로 이 공간이 위축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태원을 거점으로 공연을 하는 2년 차 드랙 아티스트 박동선(24)씨는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이 있는 곳은 늘 봄이길’이라는 문구를 적으며 기억하고 애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고 유연주씨의 언니 유정(25)씨는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안일함이 낳은 관재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다’ 등 미리 적어온 다섯 가지 문구 중 유정씨가 고심 끝에 고른 것은 '감사'였다. 다른 요구와 요청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했지만 감사는 표현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잊지 않고 위로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 덕에 저희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정씨는 촬영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깊은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지만 연대와 관심, 공감이 함께하는 한 이태원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거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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