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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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디아스포라문학(이산문학)은 전에 없는 주목을 받았다. 연말 서점가에서 '올해의 소설'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린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대표적이다. 한국계 작가들의 세계적인 활약은, K콘텐츠 바람과 더불어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기쁜 일이지만 한국계 작가에 대해 기사를 쓰는 일은 꽤 조심스러웠다. 그들의 성취가 오롯이 '한국의 것'인 듯 쓰지 않으려 애썼다. 뒤섞인 문화가 독자에게는 감동이 되는 디아스포라문학의 특징을 간과하게 될까봐, 새로움을 배척하지 않는 독자의 존재가 디아스포라문학을 빛나게 하는 중요 요소임을 빠트릴까봐 우려해서다. 특히 소수자로서 목소리가 진하게 밴 작품을 소개할 때면, 후자를 더 신경 썼다.
이런 고민이 깊었던 건 지난해 7월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의 국내 출간 소식을 전할 당시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 가정으로 입양된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쓴 이 시집은, 국가 간 입양 문제를 꼬집어 이미 덴마크·스웨덴에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북유럽에서 입양을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보는 여론이 형성된 시작점이 됐다. 작가는 증오 편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책을 읽고 해외 아동 입양 결정을 철회했다'는 독자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의 성취는 작가는 물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라도 귀를 기울인 그 사회의 것인 셈이다.
그때 떠오른 건 우리 사회에도 '마야'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국내 인구 중 체류 외국인(약 220만 명, 2022년 10월 기준) 비중을 따지면 4%대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문화·다인종국가(5% 이상) 기준을 감안하면, 한국도 적지 않은 이주민들이 함께 사는 사회임이 분명하다. 이 수치만 봐도 이주민, 소수자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혹은 고국의 문화와 한국의 것을 융합해 색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마야'의 존재는 충분히 예상이 간다.
그런데 그 작가에게 마음을 열 한국 독자는 있을까. 지난 연말 접한 몇몇 풍경만으로도 그 기대는 꺾였다. 지난달 대구 이슬람 사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건설 현장 앞에서 벌인 통돼지 바비큐파티를 촬영한 보도사진을 보며 우리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넓게는, 15년째 표류해 지난해에도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차별금지법'을 보며 또 한번 좌절했다.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국격의 척도라고들 말한다. K콘텐츠 열풍 속에도, 이 나라의 국격을 자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이달 6일 시상식이 열리는 제63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에 역대 처음으로 중동을 소재로 한 책인 '인류본사'(이희수 저)가 선정됐다. 이 책이 "편견과 차별에 젖어 있는" 한국 사회에 지금 필요한 교양서라고 본 심사평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저자의 인터뷰를 보고 한번 더 주억였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다른 생각을 쳐냈던 국가는 쇠락했습니다." 국격이 한 단계 높아지기 위한 길은 의외로 명확한 듯하다. 새해에는 이주민 작가들이 쓴 일종의 '역(逆)' K디아스포라문학의 인기를 취재할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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