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여의도에 때아닌 ‘자객공천’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국민의힘이 사고 당원협의회 68곳 가운데 42곳의 조직위원장을 인선하며 26곳은 공석으로 놔두면서 나온 얘기다.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지역구라 여당이 이들을 표적으로 자객공천을 준비한다는 관측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게 자객(刺客)이다. 정치거물에 젊고 참신한 신인을 맞붙게 하는 전략은 효과가 익히 검증됐다.
□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 시절 처음 등장했다. 자객의 당선이 포인트가 아니고 거물의 낙선이 목적이다. ‘1노3김’이 전국을 분할한 1987년 12월 대선이 끝난 뒤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 DJ는 동교동계 2인자였으면서 YS(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 힘을 보탠 후농 김상현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민청학련 출신 젊은이를 내보냈다. 이로 인해 서울 서대문갑에서 통일민주당 김상현과 평민당 김학민 후보는 야권표가 분산돼 동시 낙선했고, 민정당 후보가 금배지를 달았다.
□ 선거에 자객을 끌어들이긴 일본 파벌정치가 대표적이다. ‘자민당 황태자’로 불렸던 왕년의 정치거물 오자와 전 민주당 대표는 자민당 거물 정치인들을 상대로 유독 여성 신인을 자객으로 활용했다. 보수적인 일본에서 정치경험이 전무한 젊은 여성을 등장시키는 수법이다. 세대교체와 변화에 대한 갈망을 충족한다면 위력을 발휘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민영화법을 반대해 자민당을 뛰쳐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반란파를 타깃으로 정치 자객들을 탄생시켰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도 이때 공천받았다.
□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야권 대선주자 문재인을 겨냥해 27세 손수조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법안을 주도한 민주당 강경파 초선모임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경기 남양주병) 지역도 위원장 자리를 비워놨다. 수도권 121석 중 17석뿐인 국민의힘이 야당의 현역의원을 무너뜨리려면 많은 자객이 필요하다. 이 자리에 ‘친윤석열’ 검사들이 대거 충원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치르는 첫 총선에 등장할 무시무시한 진짜 칼잡이 ‘검객(檢客)’들이 참신한 정치신인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내년 4월의 실험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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