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12일 개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 없이 국내 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사실상 정부의 최종안으로 제시했다.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기부를 받고, 그 돈으로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지급(제3자 대위변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방안이 현실적이며 불가피한 해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 경제활동과 자산을 철수해서 강제 집행이 불가능하며, 한일 양국의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피고 기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한일관계 개선에만 급급한 인상이 역력하다. 발제자로 나선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고 했지만,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민법 제469조 제1항은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제3자의 변제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재단의 기부에 일본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지만, 피고 기업은 아예 빠져 있는 데다 그조차도 매우 형식적으로 문을 열어놓았을 뿐이다.
정부는 이날 토론회를 마지막 여론수렴 과정으로 삼고 조만간 최종안을 마련해 일본 측과 협상에 나설 거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자 측과 야권이 불참하는 등 반쪽 토론회로 전락한 것이 보여주듯 충분한 설명과 동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무시한 채 기부금을 구걸하는 처지로 내몰았다”며 “사법 주권을 포기하는 굴욕적인 해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서 국장은 이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일본 피고 기업의 최소한의 배상 참여나 유감 표명도 없는 해법이 창의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 이대로 강행했다가는 여론 악화로 한일관계 개선이 더 요원해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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