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곧게 뻗은 하얀색 나무 기둥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바닥엔 하얀 눈까지 소복이 쌓여 있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겨울 산행이나 풍경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겐 '성지'나 다름없다. 숲 입구 주차장부터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요즘 이곳은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새하얀 성지를 찾아 나선 '순례 행렬'이 새하얀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어느 한 계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일 년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얀 눈과 하얀 자작나무가 함께 빚어낸 겨울 풍경이 그야말로 '백미'다. 지난 주말 눈 소식을 듣고 '하얀 성지' 자작나무 숲을 찾아 나섰다. 낮 12시경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 일대가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등산객들과 함께 서둘러 탐방로 입구로 향했다. 이곳에서 안전관리원들은 등산객들에게 안전 등반을 위해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할 것을 강조했다. 탐방로가 시작부터 가파른 데가 쌓인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빙판길처럼 미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등산용 스틱으로 준비한다면 부상 위험을 더 줄일 수 있다. 안전관리원들은 티셔츠와 패딩 등을 여러 겹으로 입거나 방한용 부츠를 착용할 것을 권했다.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데, 잠시 휴식을 취할 경우 한기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입구를 개방하고 오후 2시까지만 등반을 허가하므로 탐방 계획을 잘 짜야한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올라가는 이들과 내려오는 이들이 맞물리면서 도시의 번화가를 연상케 하는 길고 복잡한 행렬이 만들어져 있었다. 경사진 탐방로는 만만치 않았다. 초입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이 정상에 이르러서야 끝나다 보니, 길게 이어진 행렬 중에서는 계속 치고 올라가자는 이들과 쉬었다 가자는 이들, 이만 내려가고 싶어 주저하는 이들이 옥신각신 뒤엉키기도 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어렵게 한 걸음씩 올라 마침내 정상에 서면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탐방로 정상인 원대봉 능선은 총 6ha 규모의 대지에 자작나무 40여만 그루가 마치 흰색 물감을 끼얹은 듯 새하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지는 물론, 가지마다 내려앉은 눈으로 세상천지가 눈 부시게 아름다운 겨울왕국이다. 하얀 나무들이 녹색 신록과 어우러지는 봄이나, 붉은 단풍이 흐드러진 가을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며 눈이 호강하는 사이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들려와 귀까지 즐거워진다.
이번 주말 강원 지역에 큰 눈이 예보됐다. 이곳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도 적지 않은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차량 월동 장구를 비롯해 겨울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서야 한다. 물론, 강설 상황에 따라 출입이 통제될 수 있으니 관리사무소 등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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