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중국 5대10국의 마지막 왕조는 후주(後周)인데, 그 마지막 황제 공제(恭帝)를 몰아낸 이가 송(宋) 태조 조광윤이다. 태조의 모친 두태후는 961년 숨을 거두며 “네가 황제가 된 건 공제가 7세 어린애였기 때문”이라며 “어린 아들 대신, 나이 많은 네 동생에게 황위를 물려주라”고 말했다. 태조의 동생 조광의가 2대 황제(태종)가 된 연유다. 태종이 몇 년 뒤 조보에게 물었다. “나도 동생 광미에게 물려주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조보가 말했다. “태조께서는 이미 큰 과오를 범하셨습니다.” 이후 태종은 제위를 자신의 세째 아들 진종에게 물려줬다.
□고려 충렬왕과 충선왕은 부자 권력투쟁을 벌였다. 충렬왕은 제국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친아들 충선왕과 며느리(계국공주)를 이혼시키고, 며느리를 10촌 종제뻘 왕전에게 재가시키려 했다. 왕위를 넘보지 못하도록, 아들에게서 원나라 부마(駙馬) 지위를 박탈하려는 속셈이었다. 아들 내외의 이혼과 며느리 재가를 위해 원나라에 관련 상소를 세 번이나 올렸다. 이런 시도는 원의 성종이 죽고 무종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충선왕 입지가 강해져 무산됐다. 권력다툼에 이용됐던 왕전은 충선왕이 권력을 잡은 1307년 참수됐다.
□최고권력자 엄마가 친아들을 죽인 경우도 있다. 당(唐) 고종의 황후로 정권을 장악하고, 고구려ㆍ백제를 멸망시킨 측천무후가 대표적이다. 신당서에 따르면 친아들 이홍(李弘)을 황태자로 삼았으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자 독살했다. 측천무후보다 150년 앞선 인물인 북위 선무제의 비(妃)이자, 선무제의 뒤를 이은 효명제의 생모 호선진(胡仙眞)도 그렇다. 아들이 황제가 된 뒤 호태후로 불리며 전권을 휘둘렀는데,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효명제를 독살했다.
□역사 기록 속 형제부모 다툼은 권력 투쟁의 냉정하고 치열함을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치인끼리 요즘 여당 대표 자리를 놓고 낯뜨겁게 대립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윤심’ 개입 논란이 나오지만 절차적 공정성만 허물지 않는다면, 국정에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누구라도 문제 될 것은 없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