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t up, please." 한국말로 하면 "입 닥쳐 주겠니?"
미국 백인남성 문화의 오랜 자부심이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렇게 쏴붙이고도 박수를 받은 아시아계 여성이 있으니, 미셸 여다. 홍콩 스타로 알려져 있지만 말레이시아 태생인, 한국에선 양자경(楊紫瓊ㆍ량쯔충)이라 불리는 그 배우다.
올해 61세가 된 여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중이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3중의 시련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가가 젖어들 때 경쾌한 피아노 연주곡이 깔려 분위기를 깼다. "적당히 하고 내려 오라"는 퇴장 사인이었다.
여가 무대 뒤를 돌아보며 "셧업"이라 외친 건 그때였다. "당신 콱 패버리는 수가 있어. 하하. 진짜야!" 여도 웃고 관객들도 웃었지만, 그건 분노를 실어 날린 여의 발차기였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그가 보여 준, 우아하고 고요해서 더 통쾌한 고수의 발차기. 그러고 나서 여는 할 말을 계속했다. 스스로 말을 멈추고 싶을 때까지.
반응은 뜨거웠다. "쾌변 같은 후련함이었다"고, "짜고 쓴 눈물을 쏟았다"고 전 세계 비주류 소수자들이 간증했다. 왜였을까. 소수자의 목을 조르는 두 가지 고정관념을 여가 한꺼번에 후려쳤기 때문이다.
소수자는 언제나 작아져야 한다. 몸집, 실력, 야망을 축소해야 하며 특히 뭔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워선 안 된다. 미국 NBC방송은 "여의 수상소감은 '작고, 얌전하고, 조용하라'는 유구한 압력과 싸우는 아시아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했다.
충분히 작아지지 못하면 미안해하기라도 해야 한다. 여가 여느 소수자였다면 몸을 최대한 작게 말고 허둥지둥 무대에서 내려오며 "죄송하다"고 10번쯤 말했을 것이다. 소수자는 존재 자체로 사과하기도 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원…'에서 여가 맡은 주인공 에블린이 태어나자마자 들은 말도 "죄송하지만, 딸입니다"였다.
소수자는 또한 하염없이 고마워해야 한다. 콩알만 한 것에 감격하지 않으면 분수를 모른다고 지탄받는다.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까지 달라고? 장애인은 인간도 아니었던 시절에 비하면 세상 좋아진 줄 알아야지." "대한민국 여성이라 다행인 건 왜 모르나. 히잡 쓰고 살면서 툭하면 강간 살해당하는 나라로 가버리든가."
여는 주류가 찔끔 나눠준 것 앞에 엎드리는 착한 소수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아시아계에 겨우 두 번째로 돌아갔다는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백인, 남성, 혹은 둘 다가 아니라서 박탈당한 기회에 대해 말했다. "내가 딛고 설 수 있도록 어깨를 대 준 사람들과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호명하며 기쁨을 나눴다.
무엇보다 여는 운이 좋아 조금 더 많이 성취한 소수자의 책임을 다했다. 커리어의 정점에 선 것이 개인의 트로피가 아니란 것을, 좌절을 수없이 갈아 넣은 집단의 결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대신 목소리를 내줘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도, 다음 사람이 같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너무 오래 걸릴지 모른다는 것도 정확히 알았다.
무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미셸 여는 꺾이지 않았다. 꺾으려는 힘을 향해 “셧업”이라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고 말을 계속, 크게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약자와 소수자들이여, 꺾이지 말고 "스피크 업,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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