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숫자 ‘3’이 갖는 복잡성은 ‘2’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양자 협상과 삼자 협상은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양자 협상은 힘의 우열로 쉽게 결정되지만, 삼자 관계는 약자들의 연합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 고위 관료나 대규모 조직의 최고경영자(CEO) 선발도 최종 후보가 2명보다 3명으로 압축된 ‘삼각 구도’일 때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이 힘들어진다.
□‘3’이 갖는 다차원적 성격은 고금을 관통한다. 삼국지가 대표적이다. 위·촉·오 가운데 가장 약한 촉의 유비를 위해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를 꾀했다. ‘3’의 복잡성을 노린 경우다. 위라는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 세력이 적은 오와 촉이 연합해 생존한 뒤, 힘을 키워 최종 승자가 되겠다는 책략이었다. 북한의 생존전략도 비슷하다. 북·중·러 3각 구도를 이용해 처절한 줄타기 생존전략을 펼쳐 왔다. 김정은은 푸틴과 거리를 두는 것 같으면서도 미 국무장관을 만나면 ‘중국을 불신한다’는 메시지도 내보낸다.
□제도만 놓고 보면, 현대 인적자원관리 기준에도 손색없는 임용제도를 갖췄던 조선 왕조도 ‘3’에 주목했다. 조선은 문관 인사는 이조, 무관은 병조에서 주관했다. 이조와 병조의 인사 실무자인 전랑(銓郞)은 청요직이라 불리며, 관료 선발에서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후보 명단을 왕에게 올릴 때는 반드시 3명 후보를 적시토록 했다. 삼망(三望) 원칙이다. 단종 때의 ‘황표정사’처럼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무진의 주제넘은 인사권 전횡을 막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재를 구하겠다는 왕조 설계자의 의지가 확인된다.
□차기 우리금융 회장 경쟁구도가 관료 출신 외부 인사와 내부 인사의 ‘양강’ 구도에서 ‘3각’ 구도로 재편된 모습이다. 외부·내부 인물 2명씩 최종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됐다지만, 그 스펙트럼은 확연히 3개 그룹을 형성한다. △관치금융 논란이 우려되는 외부 인사 △조직 이기주의와 ‘고인 물’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내부 인사 △개혁성향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OB 인사(우리금융 출신자)가 그것이다. 예상보다 복잡한 구도를 만든 우리금융 과점 주주들이 금융산업 혁신과 공익성을 동시에 실현시키는 결과를 도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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