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콘텐츠 관리시스템에는 하루 1만 장 정도의 내·외신 사진이 들어온다. 일주일이면 대략 7만~8만 장에 달하는데, 지난주는 튀르키예 대지진 여파로 10만 장을 훌쩍 넘겼다. 이 중 신문에 실을 만한 사진과 아닌 사진을 감별하는 것이 멀티미디어부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지진 사진을 예로 들면, 피해 상황을 현장감 있게 포착하고 구도나 광선 등 심미적 완성도도 갖춘 사진들을 골라서 지면 게재 후보로 분류한다. 과하게 자극적이거나 참혹한 장면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불합격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한 장 한 장 지진 사진을 넘겨보다 문득 내 모습이 병아리 감별사 같다고 느꼈다. 영화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콥도 병아리를 감별하는 내내 무표정했다. 그는 감별 후 수컷들만 모아 도살한다는 ‘살벌한’ 얘기조차 세상 평온하게 들려준다. 매일 반복된 업무에 감정마저 무뎌진 탓일 거다. 나도 비극적 장면을 대할 때 감정이입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다 보면 ‘작업’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불행 앞에서만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지난주 내내 그러했다.
영화보다 더 거짓말 같은 참혹함이 사진에 담겨 날아왔다. 줄줄이 무너진 건물들, 피투성이가 돼 울부짖는 생존자들,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는 청년들, 잔해 밖으로 툭 튀어나온 한쪽 발. 절망으로 뒤덮인 현장에서 기적처럼 생환한 아이들을 보면서도 웃을 수 없다. 대부분 부모가 함께 구조되지 못해 혼자서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오늘의 고통스러운 기억 또한 평생 곱씹으며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다. 더 기막힌 건 사진으로 찍히지 못한 아이들의 운명이다. 유니세프는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가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폐허 속에서 아이들의 생명이 하나둘 꺼져 가던 7일 밤 평양에선 한 어린이가 특별한 저녁식사에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북한 매체는 인민군 창건 기념 연회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병풍처럼 늘어선 할아버지뻘 군 장성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다음 날 열린 열병식에 아빠 손을 잡고 나타난 11세 소녀는 지진 희생자보다 훨씬 많은 또래 아이들을 몰살할 수 있는 핵무기의 행렬을 마치 뮤지컬을 관람하듯 ‘VIP석’에서 내려다봤다. 군중의 함성을 신기해하며 대량 살상무기 앞에서 천진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은 소름 끼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어른들에게 미래를 빼앗긴 아이가 참 불행해 보였다.
8일 오전 평양발 사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인천의 한 가정집 사진이 슬며시 들어왔다. 현관문에 폴리스라인이 ‘X’자로 붙었고, 그 옆엔 아동용 자전거가 서 있었다. 전날 이 집에서 12세 아이가 숨졌다. 온몸이 피멍과 흉터투성이인 채로. 부모는 학대의 흔적을 아이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 둘러댔다. 따뜻하게 손잡아 줄 아빠가 그리웠던 아이는 장난감 공룡과 함께 찍은 사진을 앞세우고 서럽게 영면에 들었다. 친부와 계모가 결국 구속됐지만 아이의 불행은 되돌릴 수 없다.
걱정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이번 주는 어떤 불행한 장면들과 맞닥뜨리게 될까. 만약 신이 있다면 제발 아이들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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