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워킹맘 오혜선이 말하는 '진짜 북한 이야기'
"뇌물 주고받는 게 당연... 병원 진료도 못 봐
드라마를 보는 순간 만큼은 현실의 불행 잊어
주애, 공주 모습 갖춰가... 김정은 후계자 신호"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왜 그는 목숨까지 걸고 북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요. 배경만 놓고 보면 이유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출신성분이 좋은 '항일 빨치산 집안'의 셋째 딸로 평양 유명대학을 졸업한 뒤 북한 무역성과 대사관에서 일했던 엘리트. 잘나가던 외교관 집 맏며느리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았으니까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금수저'라고 부를 만합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의원(국민의힘)의 아내 오혜선(55)씨 이야기입니다.
"자유의 맛을 봐버렸으니까요."
그가 말한 탈북 이유는 간명했습니다. 덴마크, 영국 등 해외 경험을 하면서 북한 체제의 속박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순 없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건너온 지 벌써 7년. 그는 최근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핵과 미사일로만 북한을 다루는 방식에서 벗어나 워킹맘이자 주부로 겪었던 진짜 북한살이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4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나 북한 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평범하게 사는 게 범죄…뒷돈은 '뇌물' 아닌 '예물'로 불려"
-책을 보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셨다는데요. 다른 주민들의 삶은 더 열악했다고요.
"말도 못 하죠. 북한 사람들은 돈 몇 푼 벌어보려고 원래 직업 외에 장마당(시장)에서 장사를 많이 해요. 그 풍경을 보면 먹먹해지죠. 두부 장사를 하려면 콩을 갈아야 하는데 믹서기가 없는 데다, 있다고 한들 전기가 없어요. 밤새 맷돌을 돌리죠. 가스도 안 나오니 석유난로 위에 올려 끓입니다. 평양은 사정이 가장 나은데도 그렇죠. 사실 살림할 때보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북한 체제가 무너졌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죠."
-병원의 모습은 어땠나요.
"큰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신장증으로 투병했어요. '무상치료제도'를 선전해온 북한 사회의 민낯을 봤죠. 동진료소(보건소)에는 검사 장비도 없어요.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를 재사용하니 형편 좋은 사람들은 개인 주사기를 들고 다녀요. 저는 아들을 데리고 평양의학대학병원을 다녔어요. 북한 최고의 병원인데도 의사들이 월급이나 쌀 배급을 제대로 못 받으니 환자에게 공공연히 뇌물을 요구해요. 그걸 모르고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차례를 기다리죠. 하지만, 돈 있는 환자들이 뇌물을 들고 새치기하니 결국 진료를 못 받아요."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처럼 들리는데요.
"네,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범죄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입에 풀칠하려면 뒷돈 받지 않을 수 없는 구조죠. 병원뿐 아니라 검찰소, 보안성(경찰) 등 단속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받습니다. 예컨대 아이가 갑자기 아파 공관차(관용차)에 태워 병원을 가는 길에 보안원에 잡혔다고 쳐봐요. '민간인을 태우는 건 불법'이라면서 면허를 빼앗아가는데 찾으려면 휘발유라도 가져다줘야 해요. 그들은 뒷돈을 뇌물이라고 안 해요. 예물(禮物·예의를 담아 받는 돈)이라고 표현하죠. 받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에요. 아무도 법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봐요."
-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가요.
"사회주의의 핵심은 평등이잖아요. 국가가 인민 집단을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북한은 김씨 일가를 중심으로 세상이 돕니다. 3대째 세습했다는 건 사회주의를 포기했다는 의미죠. 북한의 대표 구호만 봐도 알 수 있죠. 1960년대에는 '인민의 자유, 행복을 위하여'였고, 1970~1980년대에는 '인민에게 복무하는 참된 일꾼이 되자'였거든요. 지금은 '김정은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자'입니다. 세뇌라는 게 무서워서 저도 북에 있을 때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어요. 유럽을 다니면서 문제의식을 느꼈죠."
"한국 드라마 보다가 걸리면 뇌물…안 되면 '혁명화' 다녀오면 그만"
-북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목숨 건 모험도 할 수 있다고요.
"이해가 안 되시죠? 북한에서의 삶이 그만큼 고달파서 그렇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슬픔과 불행을 잊을 수 있거든요. 마약에 왜 중독되겠어요? 비슷한 이치죠. 드라마 주인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죠. 남북한이 70년간 분단돼 정서나 말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람 속은 다 똑같거든요. 드라마를 보다가 단속반에 걸리면 또 뇌물 주면 되죠. 한 지인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이야 까짓것 혁명화(지방 농장, 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하며 사상 교육 받는 처벌) 몇 년 하고 돌아오면 된다'고요."
-최근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유포한 10대가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김정은은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미사일 쏘고, 핵 만드는 건 결국 김씨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것이죠. 그건 외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내부 주민들에게 '우리가 외부의 포악한 적들과 이토록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단이죠. 그러니 김정은은 주민들이 한국의 실제 모습을 알고 의식이 변할까 봐 두려워하는 거죠. 우리 가족이 탈북한 것도 서구의 현실과 한국 드라마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아, 북한만 빠져나가면 자유가 있구나’ 느낀 거죠."
-북한 주민들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너희들(지도부)은 우리 생활에 정말 관심이 없구나’ 하는 것이에요. 두 번째로는 ‘지긋지긋한 이 속박이 언제 끝나지’ 하는 것이고요. 북한 사람 중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남아 있는 이는 거의 없어요. 다만,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무덤에 갈 때까지 조직 생활하며 서로 감시하는 체계니까 복종하는 척하는 거죠."
-평양에 자본주의 바람이 불면서 살림집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요.
"네,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집을 소유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암묵적으로 다 사고팔아요. 그런데 김정은이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 아파트'는 인기가 없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팔 수가 없잖아요. 돈이 안 되는 거죠. 최근에는 평양의 빈부격차가 엄청 커졌어요. 주민 대다수가 끼니 때우기도 어렵지만, 장마당에 가보면 비싼 과일도 주저없이 사는 사람이 많죠. 집에 가사 도우미 두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뇌물 받아서, 장사해서 큰돈 번 사람들이죠."
-아들 둘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북한에서 의대 다니던 큰애는 한국에 와서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탈북해 신체적 자유를 얻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답니다.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은애는 북한이나 영국에 살 때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자기는 잘하는 축에도 못 든다고 해요. 저는 애들에게 뭐든 강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한국에 온 것도 자유를 쫓아온 것이니 부모가 아닌 너희들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하죠. 아빠는 보수당(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애들에게는 정치적인 걸 요구하지 않죠. 선거 때 유세에 나오라고도 안 했어요. 북한에서는 워낙 강압적인 생활을 했으니 아이들에게도 선택권을 주고 싶은 마음이죠."
-최근 김정은의 딸 주애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후계자라는 설도 있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김정은이 주애를 후계자로 찍었을 수 있다고 봐요. 북한 사람들은 독재를 오래 경험했기에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에 촉이 늘 서 있거든요. 김정은이 자신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신호를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주애가 등장했을 때는 해프닝으로 생각했는데 옷차림이나 행동거지, 동선 등이 점점 공주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 같아요. 북한이 그런 연출을 의도 없이 할 리 없죠. 한때 김여정에게 권력이 많이 쏠리는 듯했잖아요? 올케인 리설주 입장에서는 불안했을 수 있죠. 주애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건 리설주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에서 주민들이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까요.
"북한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해방 직후 남녀평등권 법령을 만든 나라이기도 하죠. 다만, 그 여성이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주민들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죠. 저는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하지만, 김씨 일가 자녀 문제는 워낙 극비 사안이니 누가 맏이인지는 단정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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