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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절친' 정재호 주중대사는 '갑질' 논란에도 왜 당당한가[문지방]

입력
2024.04.21 14:00
수정
2024.04.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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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이 정도 갑질은 갑질도 아니라는 분위기예요.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정재호(사진) 주중국 한국대사. 정 대사는 지난달 초 대사관의 한 직원의 '갑질 신고'로 15일부터 외교부 감찰관실의 조사를 받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정재호(사진) 주중국 한국대사. 정 대사는 지난달 초 대사관의 한 직원의 '갑질 신고'로 15일부터 외교부 감찰관실의 조사를 받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정재호 주중대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난달 '갑질'을 주장하는 대사관 주재관의 신고로 외교부가 뒤늦게 조사에 나섰지만, 벌써부터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가 외교가에 나돕니다. 정 대사가 올 10월 주중한국대사관 주최 국경절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거취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지요. 외교부 조사에 아랑곳없이 당당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동창이자 절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서 손꼽히던 중국 전문가, 갑질 논란으로 바닥 친 평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는 정재호 주중국한국대사. 뉴시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는 정재호 주중국한국대사. 뉴시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겠습니다. 정 대사는 학자로서 손에 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극찬을 받아왔습니다. 미중관계와 한중외교를 연구하며 쌓은 업적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의 저서인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중국연구방법론', '중국의 강대국화'를 집과 기자실에 각각 한 권씩 갖다 놓고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한중관계를 이해하고 취재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 대사는 돌연 대중외교의 부정적 변수로 부각됐습니다. 본인은 '나사 빠진' 주재관들에게 경고를 주고 다그친 것뿐인데, 언론이 자신을 '갑질대사'로 매도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과거 본인보다 정도가 더 심했다는 전직 외교차관 A씨나 외교 고위공무원 B씨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세태가 야속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인격모독성 폭언을 일삼았다'는 주재관 A씨의 주장에 대해 외교부 감사관실에 "저성과자 주재관들의 기강해이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훈계도 갑질이 될 수 있냐는 것이죠. 국경절 행사에 참여하는 현지 기업 협찬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는 서면답변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쟁점, 다른 대응…외교부는 왜?

비슷한 문제로 외교부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은 김도현 전 주베트남대사. 그는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파기환송심은 기업으로부터 호텔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은 것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며 외교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비슷한 문제로 외교부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은 김도현 전 주베트남대사. 그는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파기환송심은 기업으로부터 호텔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은 것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며 외교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기시감이 듭니다. 그와 비슷한 문제로 도마에 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김도현 전 주베트남대사입니다. 2019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해임처분됐는데, 그에 앞서 갑질 의혹을 받았습니다. 정 대사와 마찬가지로 주재관들에게 폭언을 쏟아부었다는 이유에서죠. 김 전 대사도 "나태한 타부처 주재관들을 다그치다가 반감을 산 것이 '갑질 의혹'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대사의 해명과 교민사회의 구명운동에도 외교부는 가차 없었습니다. 신고 접수 이후 한 달 만에 귀임 처분을 내렸으니까요. 이후 해임까지는 불과 두 달 걸렸습니다. 이외에 외교부 내에는 주재관이나 본부에서 출장 온 직원을 상대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귀임 조치를 받은 전직 공관장들이 여럿 있습니다. 외교부가 이처럼 갑질 또는 폭언 논란이 불거졌을 때 우선 국내로 불러들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이상 관장으로서 조직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사의 감사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교민사회와 현지 기업, 그리고 일부 특파원들은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반면 정 대사의 경우는 싸늘합니다. 누구도 구명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중국 관영 환구망이 28일 한국 언론들을 인용, "정재호 주중국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고발됐다"고 보도했다. 환구망 화면 캡처

중국 관영 환구망이 28일 한국 언론들을 인용, "정재호 주중국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고발됐다"고 보도했다. 환구망 화면 캡처

외교부는 현지조사 기한인 한 달이 다 돼서야 뒤늦게 베이징을 찾아 상황 파악에 나섰습니다. 무척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과거 다른 대사들의 사례와는 분명 다릅니다. 자칫 특혜로 비칠 만한 부분입니다.

취임 때부터 각종 잡음과 논란…"터질 게 터졌다"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 대사는 주중대사 취임 때부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2022년 7월 베이징 부임을 앞두고 정부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타고 가는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일었으니까요. 정부 입장에서는 주미대사나 주일대사 모두 민간 항공편을 이용했는데 주중대사만 유별나게 예우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엄연히 '절차'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부임 후 현지 기업 간담회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중국 투자에 신중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날려 논란이 됐습니다. 물론,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거대 지정학적 리스크를 현지 우리 기업인 모두 인지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리스크 속에서도 우리나라 교민과 기업인들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활로를 찾아주는 것 또한 외교관의 역할입니다.

외교관이라면 기업인들에게 지정학적 리스크를 설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부로선 어떤 대비책을 마련한 상황이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장 접근할 수 있는 중국 외교채널은 어떠한지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지 기업인들도 투자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 대사의 독설과 독단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난달 정 대사의 갑질 의혹 기사를 다루기에 앞서 학계와 외교계 인사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엄격하고 무서운 교수로 유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수업 수준만큼은 좋았기에 그 누구도 그의 독설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사의 역할은 교수와 엄연히 다릅니다. 재외공관을 흔히 본국과 단절된 '고립된 왕국'으로 부르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거리를 둔 '상아탑'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주중 한국 대사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중 한국 대사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훈계'만 하고 네트워크 유지는 안 되는데…"대통령 직통외교 고수"

"양유찬 주미대사가 떠올라요."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학자가 아닌 외교관 정 대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양유찬 주미대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한 외교체계를 무시하고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경무대(지금의 대통령실) 직통외교'를 일삼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그는 4‧19혁명을 계기로 경질됩니다.

정부 소식통이 이같이 평가한 이유는 정 대사와 윤석열 대통령의 남다른 친분 때문입니다. 정 대사는 지난해 4월 재외공관장 회의와 올 1월 의료휴가 명목으로 귀국했을 때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만난 '유일한 공관장'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장관급 이하 본부 인사의 전화는 잘 받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정 대사의 이런 행보로 인해 '친분에 의한 대중외교'가 이뤄진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의 지적입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외교부에 문의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본부에서 알 길이 없다" "금시초문"이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정 대사는 저서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보안이 필요한 외교 현안을 다룰 때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는 비공식 채널과 사적 연계망이 다수 활용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비공식 채널이 아닌 공식 채널 인사입니다. 대중외교 최전선에 있는 '공식 인사'로서의 역할과 체계를 우선 수행하고 따르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외교관은 전시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현지 당국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창구'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 임무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안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려는 전방위 외교가 펼쳐질 때 이를 협의할 수 있는 중국 당국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유엔 상주 조정관과 주중일본대사, 주중미국대사를 만난 게 전부입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해 최악으로 치달은 한중관계를 경험했던 전직 고위 외교관은 "사드 사태 때도 미국과 일본에 우리가 중국 인사를 소개시켜줬다"며 "어렵게 구축한 네트워크들이 망가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는 정 대사를 향해 "어렵게 만난 중국 인사한테 왜 훈계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1) 다양한 상황의 전개 가능성을 미리 검토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물질적, 심리적 상황을 마련해야 하고, (2) 능력을 지닌 국제적 연계망과 국내적 인재를 양성해야 하며, (3) 상황에 관계없는 고착적 해법에 집착하기보다 '중형 강국'이 가질 수 있는 유연성에 기반을 둔 전략을 설계하고 수행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정재호 지음

정 대사는 자신의 저서에 이같이 썼습니다. 미중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명석한 이해와 준비에 바탕을 두되, 민활한 대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외교', 즉 '명민외교'를 펼치려면 양질의 네트워크가 확보돼야 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정 대사가 강조하는 양질의 네트워크는 '고압적인 리더십'으로 구축할 수 없습니다. '갈라치기 리더십'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 대사를 둘러싼 갑질 논란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모양새입니다. 외교부 감사관실이 베이징 현지에서 2주간 조사를 벌이는 와중에 정작 당사자인 정 대사는 귀국해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합니다. 조사 결과와 외교부의 처분이 어떻게 나올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재외공관장회의는 22일부터 일주일간 서울에서 열립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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