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나는 김정은의 딸 주애(Ju-ae)를 안았고, 미즈 리(Mrs.Lee·리설주)와도 이야기했다. 김정은은 좋은 아빠였고, 멋진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전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맨, 2013년 9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 9월 방북했던 데니스 로드맨이 '주애'를 처음 호명했을 때만 해도 이 아이가 10년이 지나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엄마인 리설주의 '주'를 따와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진 10세 소녀가 과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후계자가 될지를 놓고 국내외적인 관심이 뜨거운데요.
주애는 최근 3개월여간 7차례의 공개 행보를 통해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주요 군사 이벤트에 줄곧 등장했죠. 또,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주석단 귀빈석에 앉아 '최고존엄'인 아빠(김정은)의 볼을 쓰다듬기도 했고요. 군과 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은 주애 뒤에 병풍처럼 서 있거나 극진히 의전하기 바빴습니다. '백두혈통'(김일성의 직계 가족)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죠.
주애는 진짜 '포스트 김정은'일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아직 후계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의 3가지 핸디캡을 언급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를 극복하거나 제거하면 차기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죠. 북한 체제의 유력한 후계자 후보, 주애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봤습니다.
①신비주의 없는 행보…10세는 너무 어리다?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가 어린 나이입니다. 2013년생으로 알려진 주애는 올해 고작 10세인데요. 평범한 아이라면 소학교(초등학교) 4학년으로 붉은 머플러를 두르고 조선소년단 활동을 할 때죠. 후계자로 내세우기엔 너무 어리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전례를 보면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김정일은 32세 때인 1974년 2월 북한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내정됐죠. 아울러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일은 권력을 잡고도 한참 동안 활동사진만 보도됐을 뿐 움직임이 담긴 영상이나 음성은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귀띔했습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꽁꽁 숨겨 온 모습을 드러냈죠. 김정일은 당시 "김 대통령이 평양에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더 늦게 나타났습니다. 24세 되던 2008년에 후계자로 내정된 뒤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당대표자 회의를 통해 차기 권력임을 공식화했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39세인 김정은이 집권할 수 있는 기간이 30년은 남았는데 벌써 후계자를 내정하면 좋을 게 없다"면서 "후계자에 몰리는 종파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애는 후계자가 아니라 핵무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군사력을 통해 지켜야 할 '미래세대'를 상징할 뿐이라는 것이죠.
반면, 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됐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어린 나이는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의 이모인 고용숙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이렇게 전했습니다. "김정은의 10세 생일날인 1994년 1월 8일 김정일이 핵심 측근들에게 '앞으로 내 후계자는 정은이다'라고 말했다"라고요. 다만, 극소수 인원만이 이 사실을 알았죠.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형인 김정남이나 김정철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는데요. 김정은이 이를 듣고 마음고생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후계자(주애)는 일찌감치 간부와 인민에게 공표해 억측을 차단하고, 어려서부터 경험을 쌓게 하려 한다는 게 정 실장의 주장입니다.
②북한에서 여성은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다?
주애가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의 두 번째 근거는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은 북한 사회에서 여성을 최고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주애는 결국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처럼 오빠를 보필하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죠. '포스트 김정은'이 아닌 '포스트 김여정'이라는 주장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당과 군, 행정부의 간부 구성을 보면 남녀 비율이 9대 1 정도"라면서 "이런 구조 안에서 후계자가 되려면 때로는 무자비하게 피의 숙청까지 해가며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데 주애가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리설주나 김여정처럼 주애도 김정은 옆에서 국내외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역할 정도만 할 것이라는 예측이죠. 또, 딸이 후계자가 되면 그 후대부터는 '김씨 혈통'이 엉키는 문제가 생깁니다.
반면, 탈북민 사이에서는 여성 최고 지도자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계급사회인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평범한 주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에 주애도 단순히 여성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죠. 탈북민인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북한에서는 여성이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생각일 뿐"이라면서 "예컨대 '딴따라'(예술단 가수) 출신인 리설주가 국모가 된다는 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치적 요구에 따라 스토리를 만들어 우상화하면 주애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아내 오혜선씨도 "북한 사람들은 여성 지도자를 의외로 쉽게 받아들일지 모른다"면서 "다만 그 여성이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주민들도 따를 것"이라고 봤습니다.
③오빠가 있는 한 권력 승계는 불가능?
김정은은 리설주와의 슬하에 세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죠. 첫째는 아들(2010년생 추정), 둘째는 주애(2013년생 추정)인데 막내(2017년생 추정)는 성별조차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주애를 후계자로 보지 않는 이유도 오빠의 존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정원은 2010년대 초 북한으로 남아용 고급 장난감이 대량 수입된 정황이나 그 밖에 휴민트(북한 내 정보원)를 통해 알아낸 정보 등을 바탕으로 김정은의 맏이가 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죠.
박 교수는 "외부 노출을 철저히 차단한 장남이 오히려 후계자의 전형적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김정은과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는 설명이죠.
하지만, 맏아들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태영호 의원은 "2016년 탈북할 때까지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지난 15일 국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김정은에게 장남이 있다는 설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고 확인할 수 없다"고 언급했죠.
또 다른 가능성은 '맏아들이 있지만 성격이나 건강 면에서 후계자가 되기 부적합한 경우'입니다. 정 실장은 "만약 장남이 김정은의 둘째 형 김정철처럼 정치·군사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후계자로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딸이라도 국가 운영에 대해 관심이 크고 배짱이 두둑하다면 얼마든 후계자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맏아들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만약 김정은의 아들이 유학 중이라면 전례가 있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죠. 아버지 곁에 있는데도 주애와 달리 공개 행보를 하지 않는 건 건강이 약하기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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