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클로데트 콜빈
1955년 12월 1일, 만 42세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1913~2005)가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버스 백인 전용석에서 버티다 체포되기 6개월 전, 정확히는 그해 3월 2일 바로 그 마을에서 같은 혐의로 수갑에 차여 수감된 만 15세 소녀가 있었다. 흑인학교 고교생 클로데트 콜빈(Claudette Colvin, 1939~)이었다.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청소년위원회 회원이던 콜빈은 학교에서 배운 민권운동에 따라 분리차별의 부당함에 저항하고자 하교 버스에서 급우 세 명과 함께 백인 좌석에 앉았다. 당시 시내버스 이용객은 대부분 흑인이어서 앞줄 네 줄 백인 전용석은 빈자리가 많았다. 일어나라는 기사의 요구에 급우들은 자리를 옮겼지만, 콜빈은 ‘요금을 냈고 빈자리에 앉는 것은 헌법적 권리’라며 혼자 버텼다. 그는 ‘흑백 분리법(짐크로법)' 위반과 질서 교란, 경찰관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유사한 ‘혐의’로 체포된 예는 콜빈과 파크스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콜빈 사건은, 프레드 그레이(Fred D. Gray)라는 인권 변호사가 민권사건으로 연방대법원까지 밀어붙이기로 작정한 첫 사례였다. NAACP 지도부는 그레이를 만류했다. 콜빈이 너무 어리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당시 콜빈이 임신한 상태였다는 점과 피부색이 너무 검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즉 인종 분리차별의 법적-윤리적 불의를 전국적으로 공론화할 주인공으로선 마땅치 않다는 거였다. 콜빈은 소년법원에서 세 혐의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5월 항소심에서 경찰관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에 로자 파크스는 고교를 졸업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이룬 노동자였고, 콜빈보다 피부색이 훨씬 밝았다.
콜빈도 다른 여성 세 명과 함께 이듬해 몽고메리시를 상대로 대중교통 분리 차별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 56년 11월 연방대법원에서 승소했다(Browder v. Ga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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