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라고 부르는 검찰 취재원이 있다. 검찰이 내뱉는 언어가 하도 어렵고 일방적이고 모순적이라 그에게 물어봐야 제대로 해석될 때가 많다. 최근엔 난이도 높은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 별칭을 ‘챗GPT’로 업그레이드해줬다. 천공이나 건진법사 수준은 아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예지력은 탁월하다. 문재인 정부 때 그가 예상한 대로 서초동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무릎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와 마주 앉아 해석이 어려운 검찰 언어에 대한 번역을 부탁했다. 검찰 밥을 오래 먹어서 그런지, 그는 여전히 삐딱하고 냉소적이었다.
질문을 던졌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16일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직후 입장을 냈다. 검찰총장이 특정 사건에 대해 입장까지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수사팀에 힘을 실어주려고 그랬겠지만,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 대상이 제1야당 대표 아닌가. 이 총장은 발언 의도와 상관없이 윤석열 정부와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이 향후 무슨 수사를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김만배씨 얘기도 꺼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김만배를 몰랐다는 윤석열 후보 말에 대해선 조사도 없이 각하했다”며 검찰 수사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검찰이 윤 대통령의 불기소 처분 이유를 설명하면서 김만배씨 진술도 윤 대통령 입장과 동일한 취지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이 김씨 주장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장동 일당이 모두 진실을 말하는데, 김만배만 거짓말하고 있다는 게 검찰 스탠스 아닌가. 김만배가 정영학 녹취록 내용에 대해 허언과 과장이라고 주장해도 검찰은 믿지 않고 있다. 특히 이재명과 관련 없다는 김만배 말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런데 검찰이 윤 대통령 관련 의혹들을 불기소 처분할 때는 김만배 진술이 근거로 활용된다. ‘50억 클럽’ 의혹도 김만배 주장대로 무혐의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얘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 장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에 대한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면 지난 정권 검찰에서 시작한 수사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 정권에서 과잉수사를 했는데도 김건희 여사를 기소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반대로 대장동 수사와 관련해선 문재인 정부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얘기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한 장관은 문재인 정부 때 잘나가던 검사들은 ‘가짜 검사’이고, 윤석열 정부 들어 출세한 검사들이 ‘진짜 검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검사는 모두 대한민국 검사이지, 문재인 정부 검사가 따로 있고, 윤석열 정부 검사가 따로 있나”라고 되물었다. ‘윤석열 정부는 망가진 검찰 조직을 정상화시켰다고 생각하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헛웃음을 연발했다. “착각은 자유다.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지켜보라. 정의로웠다고 기억되진 않을 거다.”
마지막으로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인사하는지 보면 알 거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좋은 면만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삐딱하고 냉소적인 그의 전망, 이번에는 제발 틀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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