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빚 갚느라 허덕였던 발자크의 아이러니
신간 '빚 갚는 기술'
19세기 프랑스 풍자소설의 대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는 내내 빚에 지독하게 시달렸다. 인쇄소 사업이 파산하며 생긴 채무는 아무리 기계처럼 원고를 써내도 줄지 않았고, 그는 결국 빚을 다 못 갚고 생을 마감했다. 생전의 그는 급기야 빚을 소재로 재기 발랄한 소설 '빚 갚는 기술'을 썼다. "빚지는 것은 사회에 선순환을 일으키는 긍정적 행위"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앙페제 남작이 발자크의 삼촌이라며 소설에 등장한다.
발자크에 따르면 앙페제는 “돈 한 푼 없어도 엄청난 수입이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젊은 은행가 행세를 하거나 무기 제공 사업을 하던 앙페제의 채권자는 222명에 달한다. 그는 말년에 채권자들을 한데 모아 "대부호인 여러분의 엄청난 자본 중 얼마가 자본이 필요한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뿐"이라며 "쓰이지 못했을 금광을 내가 찾아낸 셈"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고는 숨을 거둔다. 채권자들은 앙페제를 증오하는 한편 존경과 경외심까지 표현한다.
앙페제가 자산을 모으는 비결을 소개하는 대목은 실소를 자아낸다. 식욕을 돋우는 조합으로 메뉴를 선택해 식사를 하면 다른 손님의 식사를 유도하게 되니 돈을 안 내도 된다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행인을 붙잡아두면 빈 의자가 점차 채워지면서 의자 대여비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식이다.
명쾌한 채무 상환 비결을 기대했던 '빚투' 시대의 독자들은 허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앙페제의 발칙한 발상을 읽는 잠시나마, 채무자들은 빚에 휘둘리던 '죄인'에서 빚을 삶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역자는 말한다. "독자들도 발자크처럼 빚을 낭만화해 볼 수 있기를. 까짓것 그저 돈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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